원점서 새 출발해야 할 신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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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의 어느 반쪽대회가 합법적이냐를 둘러싼 법통시비는 중앙선관위에 의해서도 가려지지 못했다. 31일의 선관위 전체회의는 신민당의 주류·비주류가 각기 제출한 당대표변경등록신청을 모두 각 하한 것이다. 이로써 각목을 휘두르며 치고 받는 난투극 끝에 열린 두개의 반쪽대회는 일단 모두 무효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5월중에 열려야 할 전당대회가 못 열린 상태여서 신민당에는 지도부의 공백상태가 생기게 됐다. 반쪽대회에서 뽑아 놓은 총재·부총재니, 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이니 하는 직책은 모두 허구의 당직이 되어 버렸다.
이 같은 미증유의 혼미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세 가지 방법이 상정된다. 첫 째는 주·비주류가 모두 참여하여 새로운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다. 정치단체답게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 바로 이 방법이다.
그밖에도 중앙선관위의 등록각하 결정에 불복하여 법원에 제소하거나 당장 분당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은 지금의 혼란상태를 장기화하거나 국민의 야당에 대한 신뢰를 짓밟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다. 우선 정당의 법통을 법으로 가리겠다는 생각자체에 원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한 정당이 집안문제하나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의 판정에 의지한대서야 정치를 운위할 자격조차 없다. 더구나 점차적 인과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고도의 정치적 문제를 법의 척도로 적절하게 잴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치적 합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법적 해결로는 분쟁의 원인이 해소되지 못한다.
실제로 신민당의 주류·비주류 어느 쪽도 자 파에 불리한 법적 판정에 승복할 태세가 아니다. 이미 양측은 자 파 일색으로 당 지도부라는 것을 구성했을 뿐더러 선관위의 결정에 구애되지 않고 그 밖의 체제를 갖추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당내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분당을 염두에 둔 행위임이 분명하다. 분당을 하되 신민당이라는 간판을 차지하고 유리한 입장에 서 보려는 속셈일 뿐이다.
양파가 당내문제를 법정으로 몰고 가 한쪽이 승소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긴 측은 갖은 무리 끝에 차지한 고지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진 쪽이 이에 승복하려 할 리 또한 없지 않은가. 더구나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양측의 대화는 끊어지고, 감정은 나쁠 대로 나빠진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진 쪽은 당을 떠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궁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당내문제를 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법정으로 비화시키려는 것은 반대파를 당에서 내몰려는 의도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동지들을 당에서 몰아내서라도 신민당의 간판만 차지하면 국민이 지지해 주리라 생각한다면 이처럼 잘못된 생각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짓밟고 만신창이가 된 신민당이라면 국민이 저버리고 말리란 것을 왜 모르는가.
재 언 하거니와 신민당과 신민당인사들이 살아남는 길은 단 한가지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 원점에서 새 출발, 당을 재건하는 길뿐이다. 중앙선관위의 이번 결정은 새로운 전당대회를 위해선 오히려 다행스런 여건을 마련해 준 셈이다. 신민당은 더 이상 당을 파탄과 분당의 벼랑으로 몰아넣는 아집과 감정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 분쟁의 핵이 되는 몇 몇 인사들 때문에 단합이 어려우면 이들을 후퇴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신민당은 새로운 전당대회를 거쳐 대동단결을 이뤄야 한다. 새로운 전당대회를 거부하고 당내문제를 법정으로 끌어가려는 사람들이야말로 분당을 획책하는 해당인물로 지탄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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