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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만 큰 한국 명품업계의 무례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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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민
강승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4월 5일자 Saturday 16면 에르메스 CEO 악셀 뒤마 인터뷰.
강승민
피플앤섹션부 기자

“명품의 반대말은 빈곤·가난이 아니라 저속·무례다(Du luxe ce n’est pas le contraire de la pauvrete, mais celui de la vulgarite).”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남긴 말이다. 그는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립자다. 샤넬은 ‘명품(名品)’이 ‘허영 가득한 고가 사치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안목, 탁월하고 세련된 취향에서 비롯한 것이라 여겼다.

 지난 5일 본지 Saturday 16면에는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 최고경영자(CEO) 악셀 뒤마 인터뷰가 실렸다. 그와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녹취를 푼 원본을 기자와 에르메스 측이 서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였다. 뒤마는 회사 홍보팀으로부터 녹취록 e메일을 받은 당일 직접 검토 결과를 보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터뷰에서 기분 좋은 얘기만 오간 건 아니었다. “버킨백 대기 리스트는 마케팅 상술 아니냐” 등 껄끄러운 질문도 있었지만 그는 성심껏 답했다. 언론을 대하는 자세, 명품다웠다.

 하지만 명품업계 인터뷰가 모두 이런 건 아니다. 소위 ‘명품 브랜드’라 불리는 한 기업 CEO로부터 최근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인터뷰 전에 예상 질문지를 달라”는 요구는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전 질문지를 보내니 “질문 중에서 이런 항목은 답하기 곤란하니 빼달라”고 했다. “인터뷰 때 질문지에 없는 물음엔 답할 수 없다”는 추가 요구 사항도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태도 탓에 인터뷰는 불발됐다.

 한국 명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수많은 해외 브랜드 CEO가 한국을 찾고 인터뷰도 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인터뷰 때마다 “한국 시장이 정말 중요하고 한국 소비자는 훌륭하다”고 말의 상찬을 늘어놓는다. 다음은 자기 브랜드 자랑을 한껏 펼쳐 놓는다. 그러나 정작 독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은 아예 받질 않으려 한다.

 CEO 연설이나 인터뷰는 기업과 브랜드 홍보에 좋은 기회다. 청바지 입고 아이폰을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가 애플 홍보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떠올려 보면 된다. 하지만 독자·소비자와의 쌍방향 소통에 서툰 이들이 우리 명품업계에 아직 많다. 언론이란 창을 통해 브랜드의 진짜 이야기가 전달되기는 원치 않는다. 그들은 인터뷰를 그저 일방적인 홍보의 장으로만 본다. 단언컨대, 그런 인터뷰는 그저 ‘광고’일 뿐이고, 그 브랜드에도 결국 도움이 안 된다. 눈 밝은 독자는 그런 광고, 안 읽는다. 몸집만 큰 한국 명품업계에는 샤넬이 말했던 ‘저속·무례’가 여전히 떠돌고 있다.

강승민 피플앤섹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