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세상을 무서워한 소년이 사진에 눈 뜬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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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글·사진
컬처그라퍼
312쪽, 1만4000원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말굽자석을 갖다 놓고 공명(共鳴)에 대해 설명했다. 한쪽을 두드리면 다른 한쪽이 공명을 일으키며 웅웅 소리를 반복하던 두 개의 말굽자석, 그 놀랍고 아름다운 소리를 잊지 못한다. 사진가 구본창(61)의 회고다. 그는 “나의 바람도 결국 그런 사진적 공명”이라며 “내가 찍은 사물과의 교감이 일종의 에너지처럼 필름 속에 스며든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기억, 순간, 사라짐, 미세한 떨림, 아스라함-. 그의 사진은 정서다. 그의 첫 에세이집인 이 책은 학교 가기를 두려워하던 내성적인 소년이 부모의 뜻에 따라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현실의 벽을 깨고 이미지로 세상과 공명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한국 현대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연 사진가 구본창의 담담한 육성이다.

 6남매 중 다섯째, 눈에 띌 것 없는 아이로 자란 소년에겐 소소한 잡동사니들을 소중히 모으는 버릇이 있었다. “형에게 물려받고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당부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란 탓인지도 모른다. 닳아 없어질 비누 조각들을 일상의 보석인 양 영롱하게 기록한 ‘비누’(2006) 시리즈는 그렇게 나왔다. 2011년 그는 사진 작품이 아닌 모아둔 물건들로 꾸린 전시 ‘컬렉션’을 열기도 했다.

 성공한 사진가 구본창이 돌아보는 젊은 시절은 이렇다. 1980년대 중반 이태원에 문을 여는 디스코텍의 인테리어와 로고를 디자인해 주고 200만원을 받았는데, 한 가지 작업으론 처음으로 100만원 넘는 돈을 받은 경험이었단다. 그가 젊은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은 아무런 대가 없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업 사진 작업을 맡으면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어느 쪽이든 한 번 나를 찾아 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자존심이란 이런 것이다.”

 지난 2월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지털정보실에서는 ‘구본창 아카이브:18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987년부터 지난해까지 그가 기획한 대표적 사진전을 조망하는 자료전이다. ‘사진 새 시좌’(1988), ‘유재 정해창’(1995) 등의 전시를 꾸리며 기획자 구본창이 차곡차곡 모아뒀던 회의자료, 신문스크랩, 전시 팜플렛과 티켓 등이 관련 영상·사진과 함께 관객을 맞는다. 책 『공명의 시간을 담다』는 평생 모으고 기록해 온 이 사진가가 일군 또 다른 아카이브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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