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 기자는 고은맘]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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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빠와 외출 전 아기 의자에서 한 컷. 아빠가 제일 좋아?

미안해.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고은이가 조금만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초보 엄마라 뭐 아는 게 있어야죠. 이런 엄마를 만나 고은이가 다른 아기들보다 더 고생하는 것 같아, 언제나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엄마들 마음은 다 비슷한지, 조리원 한 선배 엄마의 카톡 아이디는 ‘엄마가 미안해’입니다.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아이에게 미안한가 봅니다.)

그런데, 지난 번 조리원 모임이 갔을 때 일입니다.

다른 엄마들이 무한한 케어를 원하는 아이들에 잡혀 샌드위치 한 조각 쉽게 먹지 못하던 것과 달리, 고은이는 유모차 안에서 꿀잠을 잤습니다. 마치 “엄마 점심 맛있게 먹어”라는 듯, 세상 모르고 자더군요. 엄마들은 “애가 순해서 좋겠다”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잠깐, 고은이가 잠에서 깼습니다. 여기는 어디인가,,,싶은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은 서서히 우는 모드로 변해갔습니다. 진정시키려 고은이를 안아 올리고 기저귀를 점검하니 축축.

낯선 곳이 두려운 고은양. 한바탕 울어주시고 큰할아버지댁에서 실신.

고은이를 안고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화장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겨우 찾았는데 고은이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집니다. 교환대에 고은이를 내려 놓자마자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래도 기저귀는 갈아야겠기에 바지를 벗기니 자지러질 듯 웁니다. 이젠 웬만한 울음소리엔 꿈쩍 않는데 이번엔 정말 숨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기저귀를 갈면 괜찮아지려 했는데 울음을 그치치 않습니다. 쭈쭈를 물리면 진정될까 했는데, 쭈쭈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네요. 울음소리는 아이유의 3단 고음 마냥 커져만 갑니다.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다른 선배 엄마가 “기저귀 갈 때 밑에다 담요를 깔았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안 깔았다”고 했더니, “그거 깔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애들이 차가워서 놀랜다”고 설명해 줍니다.
초보 엄마가 뭘 알아야죠.ㅠ 전 그냥 기저귀 교환대니깐 그 위에서 갈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고은이는 좀 민감한 아이라 더 울었던 것 같습니다.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우는 고은이를 보자니, 초보 엄마 때문에 고생인 고은이한테 너무 미안하더군요.
고은이를 안고선 연신 “고은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몰라서 그랬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고은이 놀래는 줄 모르고, 엄마가 미안해” 하면서 고은이를 달랬죠.

그랬더니 그 선배 엄마가 “책에서 봤는데 애들한테 미안하다는 말하는 거 안 좋다”고 충고해 줬습니다. ‘미안해’라고 하면 애들이 엄마를 만만하게 본다며, 미안해가 아니라 ‘괜찮아’라고 말하라고요. 미안해를 반복하면 양육의 주도권을 아이한테 뺏기게 된다고요.
그래서 저도 고은이를 안고 “괜찮아, 괜찮아” 라고 달랬습니다.
물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적잖이 놀랐나 봅니다.

검색해 보니 소아정신과 전문의 신의진 교수(지금은 의원님이시네요)가 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이라는 책의 부제가 ‘결코 아이에게 미안해 하지 마라’ 더군요.
“괜찮아”
앞으론 이렇게 말해야겠습니다. “미안해”가 아니라.

ps. 그런데, 며칠 전. 고은이를 아기 의자에 앉히다 잘못해서 고은이가 옆으로 고꾸라지면서 매트 바닥에 머리를 찌었습니다. ‘아앙~’ 하고 우는 고은이를 안아 달래며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ㅠ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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