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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혁, 선거 때문에 미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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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고지서를 받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세금을 낸 사실을 뒤늦게 알면 분명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구멍 난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보전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공무원연금공단이 2일 내놓은 ‘2013회계연도 기금 결산보고서’를 본 국민이라면 또 한 번 공분을 느꼈을 법하다. 지난해 수입 7조4854억원, 지출 9조4836억원으로 1조9982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약 2조원의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전부 메워줬다.

 그런데 어떤 정부기관도, 어떤 공직자도 국민에게 해명 한마디 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넘어갔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무원연금 적자폭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데 있다. 안전행정부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금 명목으로 올해 2조5854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내년엔 3조원, 2020년엔 6조2000억원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당장 연금개혁을 단행하라”고 정부 청사 앞에서 매일 항의 시위를 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개개인에게 직접 세금고지서가 발급되지 않다 보니 국민이 둔감해진 때문일까.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올 1월까지만 해도 유정복 당시 안행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연금 개혁 의지를 분명히 밝혔었다.

 그런데 2월 14일 안행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직전부터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당시 유 장관은 연금 개혁 방안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됐느냐는 기자 질문에 “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별도로 정리해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해 이번 업무보고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열흘 뒤 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속에 담긴 연금 개혁 내용은 국민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쳤다. 2015년에 재정 재계산을 실시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2016년에 법개정을 하겠다는 거였다. 공무원 저항이 심한 연금 개혁을 집권 2년 차도 아니고 3년 차 이후로 늦춘다는 결정은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한 연금 전문가는 “공무원연금(100만 명), 군인연금(60만 명), 사학연금(27만 명) 가입자와 가족들은 대체로 보수 성향으로 여당의 표밭이다. 선거 눈치 본다고 개혁할 용기를 못 낸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일까. 강병규 신임 안행부 장관은 2일 취임사에서 역점사업을 열거했지만 어디에도 연금 개혁을 다짐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공직자의 소극적인 선거중립이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을 선거를 의식해 제때 하지 않는 ‘부작위(不作爲)에 따른 선거중립 위반’도 범해선 안 된다. 연금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