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포츠·문화·축제의 장 … 관람객들도 '점핑! 점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마장마술경기대회 ‘점핑 에르메스’에는 세계 정상급 선수의 경기(왼쪽)와 기마술을 소재로 한 예술 공연이 함께 펼쳐졌다. [사진 에르메스]

프랑스 파리 시내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다. 또 다른 파리의 상징 개선문에서 시작해 루브르 박물관 근처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샹젤리제다. 지난달 중순, 2㎞ 남짓한 샹젤리제 거리 양편 100여 개 가로 등 기둥 전부를 천포스터가 뒤덮었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가 주최하는 국제마장마술경기대회 ‘점핑 에르메스’ 포스터였다. 파리 시내를 들썩이게 만든 대회에 이 다녀왔다.

파리=강승민 기자

샹젤리제 남쪽으로 유리 천장 지붕이 돋보이는 웅장한 건물이 있다. ‘거대한 궁전’이란 뜻의 프랑스어 ‘그랑팔레(Grand Palais)’다. 1900년 완공된 건물엔 프랑스국립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들어서 있고 중앙홀은 대규모 행사용 공간으로 쓰인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그랑팔레에서 국제마장마술경기대회 ‘점핑 에르메스’가 개막했다. 국제승마연맹이 공인한 5성급(CSI5*) 대회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드리고 페소아(브라질)와 세계랭킹 1위 스콧 브래시(영국) 등 세계 정상급 선수 40명이 참여했다. 총상금 66만 유로(약 9억7000만원)를 놓고 18개국 선수들이 경쟁한 경기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벌어졌다. 둘째 날인 15일, 토요일을 맞아 가족 단위로 그랑팔레를 찾은 관람객들로 경기장이 가득 찼다. 60~110유로(약 8만8000~14만7000원)짜리 하루 입장권은 5배도 넘는 가격에 암표로 거래됐다. 나른한 주말 오후의 파리가 점핑 에르메스 경기로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승마경기를 개최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57년까지 대규모 승마 경기가 꾸준히 열렸다. 그랑팔레보다 63년 앞서 시작한 브랜드 에르메스는 마구(馬具) 장인 티에리 에르메스가 세웠다. 창업 후 18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브랜드는 말 안장과 채찍, 승마용 재킷 등을 생산하고 있다. 명예 대회장인 악셀 뒤마 에르메스 회장은 그랑팔레가 “스포츠·문화·축제가 동시에 열리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에르메스는 브랜드의 뿌리와 직접 연결되는 마장마술대회를 2010년 부활시켰다. 최고의 선수들을 초청해 대회의 격을 높였다. 여기에 유소년 승마대회, 25세 이하 유망주를 발굴하는 대회도 추가했다. 또 프랑스를 대표하는 베르사유 기마술단을 동원해 예술 퍼포먼스까지 더했다. 공연 제목은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즉 변용(變容)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기마술단 소속 연기자가 중국 진시황제 병마용의 테라코타 병사로 분장해 말달리고 있다.

장애물을 아슬아슬 타고 넘는 말과 기수들의 긴장감 넘치는 경쟁이 끝나고 난 뒤,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유리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 아래로 장엄한 아시아풍 음악이 흘러나와 그랑팔레를 가득 채웠다. 진시황 병마용의 테라코타 병사들이 살아 돌아온 듯, 중국식 병사 복장의 공연자들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용맹무쌍해 보이는 테라코타 장군이 뒤를 따랐다. 행렬이 경기장을 지나쳐 가고 난 다음, 빠른 템포의 서양 고전음악을 변주한 선율이 이어졌다. 깃발을 든 장군이 말을 타고 무대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여러 차례의 횡단, 그리고 흰 옷을 입은 여성 기수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말 위에서 흐느적거리듯 춤을 췄다. 이내 모든 공연자는 말을 타고, 또는 걸어나와 원을 이루고 또 흩어졌다. 프랑스의 유명 안무가이자 공연기획자인 바르타바(Bartabas)의 작품이었다.

에르메스 측은 “말이 예술가라면 기수는 안무가다. 마구를 만드는 장인은 이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 준다. 기수와 말의 완벽한 호흡은 둘을 이어주는 안장에 달려 있다. 단지 편안하고 가벼워선 안 된다. 말과 기수를 하나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장인정신이 발현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브랜드의 역사와 자신들의 토대를 대중 축제로 엮어내고 이를 영리하게 풀어낸 말이었다. 말의 해, 말에서 시작한 브랜드는 말이 주인공인 역사적 스포츠 경기의 전통을 복원했다. 또 이들은 말과 역사·문화를 버무려 예술로 꾸며낸 잔치로 ‘점핑 에르메스’라는 대회를 완성해 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