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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12년 불황 일본 유통업체의 '생존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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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 인근에 위치한 세이유(SEIYU)산겐자야점. '롤백(Roll back.옛날 가격으로 돌아가자) 프로그램'을 알리는 표지판이 매장 곳곳에 나붙어 있다.

세계 최대 할인점인 월마트가 지난해 말 세이유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본격적인 시장공략을 알리는 선전 포고문인 셈이다.

세이유는 이 프로그램으로 1백40여개 품목의 값을 크게 인하했다. 콩 발효식품인 '나토'의 경우 1백57엔에서 98엔으로 37.6%나 내렸다. 탈취제도 3백38엔에서 2백88엔으로 25.8%를 내렸다.

쇼핑 나온 노구치 미치코(27.여)씨는 "이 점포의 롤백 프로그램 가격 할인폭은 기존의 어떤 곳보다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월마트가 '12년 불황'으로 가뜩이나 힘든 일본 유통업계를 초긴장시키고 있다.

NRB유통컨설팅의 다마카와 히로아키 대표는 "일본과 한국은 독특한 소비문화를 갖고 있어 지금까지 외국업체가 공략하기 까다로웠던 시장"이라며 "하지만 굴지의 토착기업인 세이유와 월마트의 전세계 유통망이 결합해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 유통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변신을 하고 있다. 백화점.할인점 할 것 없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인점의 경우 매장이 너무 많아 10년 전부터 상시 구조조정 상태에 돌입했다. 일본 할인점의 원조로 불리는 다이에의 경우 지난 한해 동안 50개의 점포를 스스로 없앴을 정도다.

◆생존 위한 몸부림=기존 유통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할인점 업계 1위인 자스코(JUSCO)의 도쿄 시나가와점.

지난해 10월 개점한 이 점포는 살아남기 위한 '실험 점포'로 손꼽힌다.

중앙 에스컬레이터를 기점으로 각층의 절반은 자스코의 직영 매장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외부 전문점들이 들어와 직영매장과 비슷한 상품을 팔고 있다. 매장 내에서 할인점과 임대 업체가 서로 경쟁하는 꼴이다.

경쟁력 있는 전문점을 유치하는 것은 이미 일본 할인점 업계의 화두가 됐다.

장기 불황에 따른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상품가격은 10년 전보다 평균 30% 가량 떨어졌다. 따라서 유통업체들이 매출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고객 한명이 아쉬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문점 유치로 직영매장의 상품은 덜 팔릴 우려도 있지만 전문성을 가진 업체들이 들어와 상품구색이 훨씬 다양해졌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확대돼 고객유치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자스코는 입구에 독립적인 편의점까지 설치했다. 신문.음료수 등 간단한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까지 할인점에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탄탄한 수익률을 자랑하는 할인점인 이토요가토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식품 부문에만 주력하고 스포츠.전자.의류 매장의 상당부분을 전문업체에 임대했다.

할인점들은 또 도심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진출해 대형화.복합화를 모색하고 있다. 도심지는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이토요가토 키바점의 경우 빈 공장터를 개발해 나갔다. 전체 8천1백평에 이르는 공간 중 할인점은 4천5백여평이며, 나머지 2천여평을 극장.식당가 등으로 꾸몄다.

다마카와 대표는 "소비자를 외곽까지 유인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할인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유통업체의 복합화는 곧 점포과잉 시대를 맞게 될 한국에서도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급 백화점도 고객유치를 위해서 자존심을 접었다.

도쿄 신주쿠의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도쿄핸즈'라는 잡화점과 각 층별로 매장을 함께 쓰고 있다. 도쿄핸즈는 없는 게 없다는 이른바 'EIY'(Enjoy it yourself)전문점이다.

국내에도 열풍이 일고 있는 DIY(Do it yourself)매장의 상품구색을 더욱 강화해 쇼핑의 재미를 강조한 형태다. 이제 다카시마야 타임스퀘어점을 찾는 고객은 수입명품부터 나사못까지 한번에 살 수 있는 셈이다.

도쿄=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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