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고 고운 우리말 쓰기 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어 순화 운동의 효과면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바르고 고운말을 사용하는데 앞장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1천만 학교 사회가 우리말을 갈고 닦는데 정성을 들인다면 전국민에 파급되는 효과가 크고 또한 그 영향도 넓겠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문교부가 최근 「국어 순화 교육」 방안을 마련, 시·도 교위와 각급 학교에 고운 우리말 쓰기 운동에 발벗고 나서라고 지시한 것은 그 성과를 기대해 볼만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상 언어가 외국어나 속어·비어·은어 등의 남용으로 크게 오염되고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국민의 정서 생활을 거칠게 해왔던 것이므로 학생 시절부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에 참가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 점에서 이번에 실시되는 국어 순화 교육 운동이 종래의 여러 운동이나 시달의 경우처럼, 그저 형식적인 눈가림에 그치는 한 때의 행사로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의 언어 철학적인 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언어란 사람의 생각을 뒤 따라서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말이란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곡 필요한 동반자이며, 한 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창조적인 힘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실상 언어는 어린이가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일 뿐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제약하는 실체인 것이다. 이 점은 한 나라의 국어가 그 민족의 삶과 밀접하게 기능 함에 있어 특이한 낱말들과 문법 저조를 민족 공유의 재산으로 제공함으로써 독자적인 사상과 문화를 창조한다는 뜻도 된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민족의 정신」인 국어가 외국어의 침투에 의해 위축된다거나 더럽혀지는 것은 결코 그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의 한 조사가 우리 국어의 외국어 오염 현장을 경고한 것은 각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문제라 하겠다. 이 조사에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외국어가 1백여종이 넘고 그 가운데 우리말보다 사용 빈도가 훨씬 많은 외국어가 20여 종이나 되며 심한 경우 95%의 빈도를 보인 것이 있다고 지적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설명해준다.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양품·양화·양복·양장점의 57·3%가 외국어 간판을 내걸고 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민족을 유지하고, 민족성을 지탱하는 한편 그 민족의 개성과 특수성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국어이기 때문에 국어의 오염이 심하면, 민족 정신은 곧바로 와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예컨대, 독일은 1855년부터 자기 나라 말의 순수성을 찾기 위한 협회를 만들고 이 협회를 통해 불필요한 외국어의 배격과 자기 나라 말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민족의식을 강화하려는 운동을 벌였었다.
또 16세기 이후 줄기찬 국어 순화 운동을 벌여온 「프랑스」에서도 최근 또다시 영어 사용을 금하는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은 그저 남의 일로만 듣고 흘려 버릴 이야기가 아니다.
무릇 나라의 말을 갈고 닦는 일은 곧 그 민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아름답고 바르게 하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시도 중단되거나 소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항상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와 지원으로 추진되어야 마땅한 중요한 국가적 과업이다.
그 점에선 문교부가 비록 「국어 순화 교육」을 위해 운동을 벌이겠다 고는 하나 단지 거기에만 그친다면 만족스런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국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국어 정책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수행할 국가 연구 기관이 건국 30년이 되는 오늘에도 아직 없다는 것은 큰 잘못이며 그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다만이 경우에도 과거의 한글 전용 논자들처럼 너무 독단으로 흐르는 과오만은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임을 첨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