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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피아·국피아도 있다 … 민간기관 낙하산 79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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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현태(60)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지난해 8월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석탄공사가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하위(E) 등급을 받아서였다. 공사 내부에서는 “불명예 퇴진이라 당분간 재취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공백은 길지 않았다. 그는 퇴임 넉 달 만인 같은 해 12월 임기 3년의 한국석유화학협회 상근부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3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으로 퇴직한 뒤 6년 새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장, 석탄공사 사장에 이어 세 번째 재취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료(4급 이상) 출신 69명이 민간 유관단체(협회·연구원) 임원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5명은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취임했다. 본지가 지난달 3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한표(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산업부 유관단체 445개(학회·친목단체 제외)의 임원 현황을 조사·분석한 결과다. 이 중 규모가 큰 100개 핵심 재취업 대상의 70%를 이들 관료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협회를 비롯한 주요 협회 10곳도 국토교통부 출신이 회장·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중 6명이 현 정부 들어 취임했다.

 그동안 산업부·국토부 출신은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에 가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제조·건설업체를 직접 규제하는 부처 특성을 활용해 산피아(산업부 마피아)·국피아(국토부 마피아)로 커 나갔다. 이들은 특히 산업발전법과 같은 관련 법률을 통해 민간단체 관리·감독권을 강화했다.

 옛 상공부·동력자원부 출신 퇴직 관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상우회’는 13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취업 6개월 이내에 민간협회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에 한해 퇴직 뒤 2년간 민간기업 취업을 금지한 규정도 소용없었다는 얘기다. 공직자윤리법에 민간 협회·연구원은 취업금지 대상이 아니라서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사실상의 관치 규제로 산업계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단체의 임원 선임은 정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이태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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