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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범 잡고 보니 문화재지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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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일신라시대 문화재를 도굴해 사고판 혐의로 문화재 지킴이 장모(57)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광역수사대 사무실에 전시된 압수품들. [뉴스1]

“지역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가꾸고 보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모(57)씨는 경북 구미에서 소문난 문화재 애호가였다. 매달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인 채미정과 낙산리 3층석탑 등 지역 문화재 탐방을 다니며 쓸고 닦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향토사 연구 및 보존회 활동을 하던 그는 2005년 비영리단체인 ‘A문화지킴이’를 설립해 본격적인 지역 문화재 보호에 나섰다.

 하지만 장 대표는 혼자 수시로 통일신라·조선시대 가마터 등 문화재 유존지역을 찾았다. 손에는 빗자루 대신 탐침봉을 들었다. 그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공시된 유존지역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 매장된 문화재가 발견되면 바로 파냈다. 도굴 솜씨가 좋지 않아 일부는 훼손되기도 했다.

 장씨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한 점 두 점 도굴한 문화재는 무려 233점에 달했다. 이 중에는 조선시대 초기 작품인 ‘분청 인화 국화문 접시’ 같은 도자기도 있었다.

 장씨는 2008년 문화재청에 문화지킴이 단체를 정식 등록했다. 구미시청으로부터 5년간 지원받은 국고보조금만 5320만원에 달한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1500여 명의 회원을 상대로 모임을 공지하고 탐방활동을 벌인 뒤 실비를 정산받는 방식이었다. 국고로 도굴범을 지원한 셈이다. 2009년엔 아예 박물관까지 만들어 도굴한 문화재를 전시했다. 하지만 운영이 여의치 않아 3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았다. 2011년 11월 장씨는 이들 문화재를 모두 지역 B사찰의 권모(50) 주지스님에게 팔았다. 권 스님은 도굴 문화재란 사실을 알면서도 3억3000여만원에 이를 사들였다.

 권 스님은 또 박모(61)씨가 2003년 자신의 집터 공사 도중 땅에 묻혀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백자 등 2점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갔다. 200만원에 매입한 불상은 3000만원을 투자해 수리했다. 감정 결과 “제대로 복원됐다면 보물 319호로 지정된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에 준하는 문화재로 40억원 상당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본드로 보수하는 바람에 2차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일 장씨 등 4명을 문화재 236점을 도굴하고 매매한 혐의 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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