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의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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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월슨」영국수상은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영국에서조차 「뜻밖의 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는 아직도 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고 있다. 국내외로 무슨 난처한 일에 쫓기고 있지도 않다.
노동당 안의 좌파세력이 골치 아픈 존재이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최근 그는 의회의 압도적인 신임까지 받아 놓았었다. 문제의 「좌파」들이 「윌슨」의 『공공지출 삭감정책』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자 의회에 신임을 물은 것이다.
한편 야당인 보수당도 아직은 약세다. 의회에서 무려 40석이나 뒤져있다. 「노조」세력이 「윌슨」정권을 흔드는 일도 없다. 「월슨」은 그 드세기로 유명한 영국의 노조들과는 「허니문」의 관계에 있었다. 전후 최악의 사태였던 석탄노조의 「스트라이크」도 「윌슨」은 부드럽게 풀어놓았다.
그러나 「윌슨」수상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섰다. 각료생활 30년, 노동당 당수로 13년. 수상재직 8년. 60평생의 3분의2도 넘는, 반세기 가까운 연륜을 그는 공인으로 지낸 샘이다.
그런 「윌슨」수상은 TV를 통해 자신의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한마디 말을 남겼다.
『대치할 수 없는 수상이나 정치인이란 없다-』 자신은 거의 완벽한 상황 속에서 더 집권할 능력과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물러난다는 뜻이다. 자기만이 최선의 집권자임을 스스로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새삼 서구정치의 수준과 「모럴」을 생각하게 한다. 어딘지 「휴메인」한 여유와 멋과 자적이 엿보인다.
그는 1964년 47세의 나이에 수상이 되었다. 영국 역사상 최연소 수상 중의 한사람이었다. 동양인의 감각으로는 「불혹의 수상」.
세상 속사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나이에 재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올해로 「윌슨」은 회갑을 맞았다. 60이면 「이순」의 경지다. 매사에 원만해지는 금도를 가져 무엇에도 변함이 없다. 그는 재상직도 그만둘만한 이순의 여유를 갖게 되었던가 보다. 「윌슨」은 어린 시절부터 수상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야심가로서의 욕망이 벌써 어린 소년의 가슴에 움터 있었다.
그러나 「윌슨」은 평소에 그 수상직도 『2년만 하겠다』는 신념을 함께 잃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2년의 4배나 되는 기간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는 이게 자신의 신념에 대한그 이상의 위약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영국수상이라고 모두 「월슨」같지는 않았다. 그는 노동당출신 수상으로 재직 중 물러나는 처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치풍토에 앞서 정치인의 「스케일」은 그 인품에 달려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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