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탕트」란 말 안 쓰겠다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스크바」에서 25차 공산당대회가 열린 그날 미국「뉴햄프셔」에서는 첫 번째 예비선거가 있었다. 당대회에 나선 「브레즈네프」가 「데탕트」의 『빛나는 성과』를 자화자찬한데 반해 「포드」미국대통령은 바로 그 「데탕트」의 우울한 결과 때문에 「리건」후보에게『정치적 패배』를 당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브레즈네프」는 다시금 『평화를 위한 투쟁』이란 기묘한 말로 「데탕트」를 재천명 했고 「포드」대통령은 「데탕트」란 말을 아예 쓰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밝혔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확실하게 부각된 사실로는 딱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한가지는, 「데당트」가 「모스크바」에 일방적 폭리만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공인된 셈이다.
또 한가지는 「포드」대통령이 「데탕트」란 용어만 쓰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힘을 통한 평화정책』이 가동될 수 있겠느냐하는 의구심이다.
미국이 새로이 『힘을 통한 평화정책』을 추구하여, 「데탕트」의 5년간이 초래한 소련 팽창주의를 꺾을 수 있으려면 하찮은 용어의 폐기보다는 「키신저」외교의 전제들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만 하지 않을까.
「키신저」미국무는 「모스크바」와 핵무기 제한협정에 서명하고, 곡물과 기술과 자본을 대주면 소련이 『보다 나은 경제생활』에만 전념하게 되어 국제긴장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그와는 정반대의 결과만을 불러봤을 뿐이다.
미국이 「인도차이나」에서 기진맥진할 사이에 「크렘린」은 미국의 곡물을 먹으면서 「유라시아」대륙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규모의 군사적 세계국가로 급성장했다. 그리하여 미국의회가 월남과 「앙골라」를 모른 체 하는 사이에 「크렘린」은 전연 엉뚱한 놀음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크렘린」강경파는 「브레즈네프」를 짓눌러 「데탕트」가 세계적화를 촉진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공연히 시인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75년 한해동안에 있었던 「브레즈네프」의 두 차례에 걸친 잠적과 SALT회담의 정체 및 소련군사력의 폭발적 확장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 목표물에 대한 소련 핵공격의 명중도는 놀랄 만큼 발전했다고 한다.
「유럽」에 배치한 소련의 전술핵무기에도 SCUD니 FROG니 하는 복수탄두를 가진 단거리「미사일」이 추가되었다. 공군의 성격은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됐고, 사단병력은 25%,보급능력은 1백%나 불어났다. 「크렘린」의 해군력도 5대양 전역에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미국이 월남을 포기할 그 무렵 소련은 이미 전세계로 팽창할 군사적 태세를 마련한 셈이다.
일단 이러한 기초를 마련한 「크렘린」은 지체없이 「데탕트」전략의 제2단계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포르투갈」과 「발칸」반도와 「아프리카」정정에의 개입으로 투영한 것이다.
「크렘린」은 SALT와 「헬싱키」협정 등으로 미국과 서구의 무기고에는 자물쇠가 채어졌다고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이제는 제3세계요충에서 중공세와 서방세를 몰아내기만 하면 전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판단은 「앙골라」·「로디지아」·서부「사하라」·「시리아」에서 극적으로 행동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아프리카」대륙의 일각이 제2의 「인도차이나」전장으로 불타기 시작한 조짐조차 있다.
그 사이에 「키신저」외교는 무슨 변명을 하고 있었던가. 「앙골라」가 적화되는 판에도 「포드」행정부는 『「데탕트」의 대안은 핵전멸』이란 흑백논리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흑백논고로써는 「아프리카」의 적화나 「나토」의 위기, 「유엔」에서의 고전과 남미일부의 제3세계 가입 등 도처에서의 외교적 손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손실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단순논리는 도저히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의 의회와 행정부와 유권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소「아메리카」적 안일을 탐하기 앞서 자유문명을 수호하는 일에 얼마나 슬기롭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