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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에게도 사서삼경 읽히며 인성교육 … 합격자 70%가 10~20대 초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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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호 10면

28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들렀다. 35만 종의 책 65만 권이 있는 곳이다. 그중 외국어 교재를 파는 D코너에서 담당 직원의 도움으로 국내 출판 외국어 교재를 검색했다. 키워드 ‘영어’를 치니 1372종이 나온다. 중국어는 3134종. 직원은 “외국에서 출판된 영어 교재까지 포함되면 실제론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데는 책을 1, 2, 3권으로 나눠 분류하는 등 세분돼 그럴 가능성이 있다.

조선의 외국어 시험과 교재

 조선시대에는 물론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 안 된 시대임에도 꽤 많은 외국어 서적이 나왔다. 당시의 글로벌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어와 관련, 세종실록에 나오는 교재를 살폈다.

 문어체 중국어인 한이학(漢吏學) 교재로는 시(詩)·서(書)·사서(四書), 『노제대학』 『직해소학』 『성제효경』 『소미통감』 『이학지남』 『충의직언』 『동자습』 『대원통제』 『지정조격』 『제어대힐』 『박통사』 『노걸대』 『사대문서등록』『제술』이 있다. 중국어 역학 교재로는 일부가 빠지면서 『효경』 『전후한』 『고금통락』 『직충의』가 추가된다. 이것만 21개다. 태조 시기에는 사서, 소학만 있다가 수십 년 만에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조선 후대에는 여기에 여러 책들이 추가된다. 몽골어 11책, 왜어 11책이다.

 책은 아주 비쌌다. 선조 시절의 기록에 따르면 역사서 『소미통감』은 종이 60첩 16장 크기인데 무명 3필 가격이었다. 군역을 면제받는 장정 1명당 베 두 필의 군포를 냈다. 면포 1필이 쌀 6말이고 조선 후기 기준 쌀 한 가마니가 5말이었으니 18말로 거의 쌀 4가마 값이었던 셈이다. 책값이 금값인 것이다.

 흥미롭게 중국어의 경우 양반·사대부의 필독서인 시·서·사서, 『노제대학』 『직해소학』 『소미통감』 『전후한』이 포함돼 있다. 교양 한어를 익히는 양반의 교재였다. 역관의 교재로 이 책이 사용된 것은 역관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조선 전기 왕들은 외국어를 중시했고 역관을 중용했지만 그들은 중인이었다. ‘중요하지만 천한 것.’ 그게 양반들이 외국어를 대하는 이중적 태도였다.

 외국어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은 중국어가 차지했고 이어 여진학, 왜학, 몽학 순이었다. 외국어를 공부한 생도들이 역관이 되는 데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는 취재(取才). 실력 있는 자를 특별 채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정식으로 역과(譯科)를 치르는 것.

 시험은 ▶강서(講書) ▶사자(寫字) ▶역어(譯語)로 구성됐다. 강서에는 배송(背誦)과 임문(臨文)이 있었다. 배송은 책을 덮고 외우며 강독하는 것. ‘외국어는 외우는 게 왕도’라는 상식은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임문은 책을 보며 강론하기. 강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보며 중국어로 강독하는 것이었다. 사자는 몽골어·일본어·여진어(청학) 문자 받아쓰기. 역어는 A 언어·문자를 B 언어·문자로 바꾸는 것. 텍스트는 『경국대전』이었다. ‘『경국대전』을 읽고 여진어로 번역하라’는 식이다. 현대의 TOFEL·TOEIC 같은 영어 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TOEIC은 문법·독해·듣기를 시험 보고 TOFEL엔 작문 시험이 추가된다. 대학생 유하늘(27)씨는 “조선시대 역과 시험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시험 합격자는 방목, 즉 합격자 명부를 통해 알 수 있다. 현전 방목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연산군 4년(1498) 때의 것. 이때부터 역과가 폐지되는 갑오경장(1894년) 때까지 177회 실시됐다. 합격자는 2976명. 한학 1863명, 일본어 342명, 여진어 317명, 몽골어 278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합격자 70%가 10대 후반~20대라는 점이다. 20대 후반을 더하면 85%다. 합격자 평균 연령은 23.7세. 후대로 갈수록 연령이 어려지고 있다. 1등 합격자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나왔다. 1등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22.9세. 이 점도 요즘의 경향과 마찬가지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을 해야 한다며 기러기 가족이 생기는 것을 선조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해진다.

 조선은 역과의 경우 문·무과에 관계없이 『경국대전』이 정한 인원을 거의 그대로 뽑았다. ‘정쟁에 관계없이 우수한 인력을 뽑는다’는 원칙이 지켜진 드문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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