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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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번 우리의 눈과 생각을 백만배로 확대시켜 보자. 그리하여 한껏 공룡이 살던 아득한 옛 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오백만년전 지금의 대륙들은 대부분 대해로 덮여 있었다. 수만년에 한번씩 땅이 솟아오르고 가라앉고 했다. 그럴 때마다 바다는 밀려왔다 나갔다 했다.
이럴 때마다 바다의 동·식물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진흙과 섞여 쌓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압과 지열이 가해지고 「박테리아」가 작용하여 지방물들이 바로 사암·수성암들 사이에 스며들었고 그 위에 다시 바다가 밀리고 땅이 솟고 하여 단단한 바위층이 덮여 나갔다.
그 무렵 한반도는 오늘처럼 대륙에서 삐져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반도의 남쪽 둘레가 여러 번 바닷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신라 때만해도『밤에 붉은 빛이 비단과 같이 피어 땅으로부터 하늘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에 있는 기록이다.
『…정월에 모지악하의 땅이 타기 시작했다. 너비 4보, 길이 8보, 깊이 5척 규모로 타다가 10월15일에야 그쳤다』는 기록도 있다.
한 국사학자는 모지악이 지금의 경주 동쪽 얘기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도 모지악에 든다. 전설만도 아닌 것 같다. 송대에 나온 『작몽록』이란 책에는 『고려의 동방 수천리에서 맹화유가 나니, 뜨거운 볕에 돌이 달아서 나는 액이라, 불에 들어가면 불길이 치뻗치고 고기들이 다 죽느니라』고 써 있다.
이를 받아 명대의 박물학자 이시진이가 쓴 『본초강목』에는 『석유는 고려에서 나니 석암에서 솟아서 샘물과 섞여 흐르며, 빛이 검고 유황 기운이 있는데, 그 곳 사람이 떠다가 등을 켬에 대단히 밝다…』고 했다. 이런 기록들을 밝혀낸 다음에 육당 최남선은 말을 맺기를
『이는… 본시 제동 야인의 낭설일지 모르되 혹시 무슨 근거가 있어서 다른 날 우리가 그 실물을 불잡게 된다면 적이나 다행이라 하겠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다행이 이제 결코 꿈만은 아닐 것 같다. 꿈은 먼 곳에 있던 것도 아니다. 지금 영일만을 내려다보듯 하늘 높이 치솟은 몇 개의 시추탑들이 마냥 우리의 꿈을 부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몇「드럼」의 기름은 나왔다. 지하 1천4백75m에서, 그것도 매우 양질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적어도 1천5백m는 더 파내려 가야 한다고 또 우리의 꿈과 같이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기까지에는 수십·수백억의 투자와 많은 기술적 애로가 극복되어야 한다. 가난으로 하여 수없이 설움을 받고 수많은 성운을 시달려 온 우리다. 수많은 꿈을 꾸어오며 살던 우리다. 그러니 흥분할 만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마냥 부풀어오는 감동을 억누르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지켜 나갈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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