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구약성서 공역하는 신 구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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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약성경이 구교(카톨릭교)와 개신교(프로티스턴트)의 공동작업으로 번역돼 나온다. 우리말 성경이 나오기는 1887년 「스코틀랜드」선교사 「존·로스」가 번역한 『예수성교전서』가 처음. 그 뒤 여러 차례의 「개역」「새 번역」을 거쳐 4∼5종의 번역이 5백만 한국교도들에게 읽혀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68년에 『가장 새롭고 여러 사람에게 친근하며 신·구교가 함께 인정하는 성경번역』으로 기획돼 신약은 이미 71년에 완성되고 나머지 구약이 새해 부활절에 그 출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성서의 공동번역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67년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와 「바티칸」의 합의로 비로소 신·구교 공동의 성경은 가능하게 되었지요.
실제적인 신·구교 공역은 우리 나라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68년4월부터 구약번역을 전담, 8년째 성서와의 씨름을 계속한 문익환 목사(58)의 말이다.
『「히브리」어의 방대한 구약을 번역하는 일은 지루하고도 어려운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막혔던 뜻이 통할 때의 장쾌함이란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했을 때의 기분에나 비길는지요.』 반백의 문 목사는 무거운 책임 가운데 뿌듯한 새해를 맞는다.
번역은 오래고도 고된 작업이었다. 제1단계는 초역. 번역은 문 목사 외에 천주교의 선종원 신부, 감리교의 곽노순씨(두분은 시간제로 참여)가 나눠서 담당했다. 2단계에서는 세 사람이 합숙을 하며 의회를 열었다. 3단계는 전체 내용을 다시 다듬는 과정. 8년에 걸친 긴 번역기간 중 있을 수 있는 동일내용에 대한 다른 표현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4단계에서는 국어전문가 김우규씨(정인여고 교사)와 이현주씨(아동문학가)가 문장을 검토하고 있다. 문 목사는 현재 3단계 중 70%쯤이, 4단계의 30%가량 끝나 조판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해준다.
번역의 원전으로는 「티텔」편저의 『히브리어 성경』(Bibica Hebraica) 3,4판을 쓰고 있다.
『성서에 본래의 원전이란 있을 수 없고 지난 47년 「사해사목」이 발견되면서 원문에 매우 가까운 성서를 얻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엔 신학적 연구가 깊어져 많은 불확실했던 부분이 밝혀지면서 신·구 양교는 서로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성경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문 목사는 이번 번역이 그러한 신학상의 성과를 마무리 짓는 일이라고 흐뭇해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교에서는 인정치 않던 외경을 하나의 경전으로 정리, 구약과 신약사이에 배치하는 등 합의도 이루어졌다.
신약은 이미 69년1월에 착수돼서 박창경 목사(장로회신대) 정용섭 목사(대한성서공회) 백민관 신부(「카톨릭」대) 허창덕 신부(「카톨릭」대) 김진만교수(고대) 이동섭 교수(이대)의 손을 거쳐 71년 부활절에 발간됐었다.
이번 번역은 특히 구투와 오역을 벗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을 하고 ▲교인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에게 친숙한 말을 쓰며 ▲영어·일어 등에 오염되지 않은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 성경을 이루어 보고싶다는 것이 문 목사의 간절한 소망이다.
하느님이 「데만」에서 오신다.
거룩한 하느님이 「바란」에서 오신다.
당신의 찬란한 빛이 하늘에 퍼지고 당신의 광채가 땅에 차 넘치는데 빛나기 대낮 같아라.
힘을 지닌 손.
그 손에서 두 줄기 빛이 뻗어 나온다.
염병 신이 앞장서고 열병 신이 뒤따른다.
멈추어 서시면 땅이 흔들리고
노려보시면 신족들이 떤다.
한 옛날 산들이 갈라지고
태고적 언덕들이 주저앉아
영원한 행찻 길이 열린다.

<하박국서 3장 317절>
『구약은 4분의1이 시로 되어 있습니다. 1천4백34면이나 되는 그 방대한 양도 어려움의 하나였지만 「히브리」의 시를 아름다운 한국어로 옮긴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번역을 전념키 위해 그동안 재직했던 한국신학대학의 교수직도 사임했던 문 목사의 고심담이다. 문 목사는 구약 번역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마음을 점령해온 문학에의 관심을 재연,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를 출간하기도 했다.
『선 신부와 함께 임하면서 처음인 구교·신교와의 사이에 교리 적인 대립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읍니다.
그러나 신학적인 견해상의 차이가 있으면 있었지 신·구교간의 대립은 없었읍니다. 이제 친동기처럼 가까와진 선 신부와 나는 「신부와 목사가 이렇듯 친할 수 있다면 신·구교사이의 차이도 별것 아니지 않느냐」고 웃습니다.』
아무쪼록 일이 순조로와 오는 부활절에 공동번역 구약이 출판됐으면 하는 문 목사는 그러나 성경번역에 역자의 이름이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번역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일이며 거기서 이루어진 업적은 오직 한국교회의 재산일 뿐이라는 것. <지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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