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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문화적 저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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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나라나 한 민족을 지탱하는 힘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만을 지침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또는 민족이 디디고선 기층문화의 저력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물리적인 힘만이 문제된다면 고대세계의 패자였던 「스키타이」유목민이나, 그 뒤의 「티무르」제국 같은 강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을 까닭이 없다.
기층문화의 저력이 없었기 때문에 한 때의 강성을 자랑하다가도 어느덧 역사의 무대로부터 스러져간 민족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반면 문화적으로 원숙한 경지에 다다른 민족은 한 때 외족의 지배를 받다가도 끈질기게 자신의 동질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시련을 이겨낸 실례를 얼마든지 보여주고 있다.
중화문명이 지배하는 동북「아시아」일대에서도 여진·말갈·흉노·돌궐 등 무수한 민족들이 명멸했었으나 유독 한민족은 오늘날까지 독자적 문화를 유지하면서 수천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것 역시 그 문화의 저력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기층문화의 힘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을 어떤 문화사가는 『전반적인 문화 능력의 향상』이니 『전통이 가지는 민족의 저력』이니 하는 말로 집약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 능력의 전반적인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폐쇄성과 아울러 전통문화로부터 유리된 사대적인 문화운동을 함께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기층문화와 상층문화,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주체적인 조화야말로 한 민족의 전반적인 문화역량과 국방능력의 향상을 가름하는 요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을 슬기롭게 수행할 수 있는 민족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낙오되고 말았다. 살벌한 국가 「에고이즘」이 판을 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도 그 점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민족공동체와 국가사회의 안보와 발전을 지탱하는 기축으로서의 문화의 저력을 중시해야 할 소이가 있으며, 그것을 위한 문화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운동은 민족이 가진 문화적 자질과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활성화하여 그 역량을 전통과 세계성의 좌표 위에 개화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양상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본사가 75년도에 이어 다시 76년에도 계속 추진키로 한 6대 문화사업들도 바로 그와 같은 인식과 목표에 조준된 것이다.
학술·문예·음악·육영·사회개발 등 각 방면을 망라한 『76년 중앙「매스컴」6대 사업』을 통해 본지는 민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새로운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폭넓은 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역사적 도전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민족공동체의 문화적 저력을 배양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옥돌도 갈고 닦아야만 빛이 나고 사람도 키워야만 인재가 되는 법이다. 문화적 제자질의 창달도 마찬가지다. 「르네상스」나, 백화운동이나, 「훔볼트」재단의 활동이 모두다 자신이 간직한 자질·의식·능력·사명감을 지키고 꽃피워 보겠다는 염원에서 나온 문화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문화운동의 성취도 여하에 따라 한 공동체의 문화역량 내지 생존능력도 향상해 갔음이 사실이다. 뜻 있는 인사들의 폭넓은 참여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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