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양화가 라희균씨가 즐기는 겨울차는 산향나무(아가위나무)의 열매를 말려 다린 아가위차. 엷은 감미와 신맛이 미묘하게 조화된 새콤한 맛의 아름다운 붉은 빛깔차다.
자택의 자그마한 뜰 한쪽에 자리잡은 아가위나무 열매를 거두어 만드는 것이다.
『10년전에 이사를 와보니까 마당에 아가위나무가 있더군요. 처음에는 봄에 피는 흰꽃이 아름답고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열매가 좋다고 생각했을 뿐, 그 용도를 몰라 버려 두었어요. 그러다 4년 전엔가 친척 어른이 한 분 오셨다가 차를 다리면 좋다고 가르쳐 주시더군요.』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유화용 물감 냄새가 가득한 자그마한 온돌방 화실에서 나여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11월 중순께면 열매를 수확하게 되는데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은빛 가지에 매달린 붉은 열매가 아주 아름다와요.』수확한 열매는 우선 벌레 먹은 것을 골라내고 꼭지를 따서 절구에 빻는다. 빻은 아가위 열매에선 끈기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씨를 골라내고 어른엄지손톱만한 크기로 환약처럼 빚는다.
『그것을 다시 햇볕에서 말려야 하는데 적어도 20일쯤, 습기가 내배지 않아야 오래두고 사용해도 변질하지 않아요.』 차를 다릴 때는 주전자에 물을 붓고 환약처럼 빚은 아가위 열매를 몇 알 떨구어 불 위에 얹으면 된다. 차 서너잔 정도의 물이라면 5알 정도가 적당한 분량. 여기 다시 생강2,3쪽을 함께 곁들여 끓이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밤늦도록 그림을 그리다보면 차를 많이 마시게 되는데 이때 아가위차를 마시면 부드러워 몇잔을 마셔도 뒤끝이 깨끗해요.』 그래서 늦가을이면 지성껏 찻감을 마련하는데 요즈음은 열매가 달리면 작은 능금 비슷한 이 아가위 맛에 맛들인 동네 꼬마들이 몰려드는통에 여의치 않게 됐다면서 웃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