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올바른 역사인식 한·미·일 공조 기초 강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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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박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 테이블에 앉는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 움직임으로 양국 간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모양새를 취했다. 아베 총리는 23일 출국길에 오르며 “박 대통령과는 첫 회담이지만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향한 제1보(첫걸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박 대통령과 동아시아 안전보장에 대해 솔직한 의견교환을 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모멘텀”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23일 “미국의 중재로,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 수용 의사를 내비친 후에 회의가 열린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선 한·미·일 정상이 같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3국 공조 복원의 의미”라고도 했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도 “핵이란 명분과 한·미·일 3자란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 다행”이라며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둘만 만나면 자존심 때문에 못할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막혔던 관계의 출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일 관계 개선은 양국의 ‘윈윈 게임’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물론 일본으로선 군사력을 팽창시켜오고 있는 중국의 견제를 위해서도 한국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 해결과 통일기반 조성을 꾀하는 한국으로선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대화의 전기가 마련된 만큼 불씨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간략한 형식의 별도 회담을 통해서라도 한·일 정상 간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베에 있었다”며 “양국 관료들의 수준에선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인 만큼 3자회동이 끝난 뒤라도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직접 소통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번 3자회담을 역사 담판을 이끌어내는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다음 달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청서 발표를 앞두고 있다. 그런 만큼 소모적인 역사논쟁이 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이번 회담에서 선을 긋는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김성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미·일 3자회담에서 역사 문제가 본격 다뤄지기 힘들지만 어떤 형태로든 오바마 대통령의 입회하에 ‘올바른 역사 인식에 대한 기초 위에 한·미·일 3각 공조가 작동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3각 회담이 열리는데, 회담 이후에도 악순환을 반복하면 미국도 동북아에서의 리더십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일본이 동시에 부담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은 “3자회담에서 한·일 양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을 앞에 두고 한·일 정상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맞지 않다”고 반대했다.

 이에 외교부 동북아 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미국이 옆에 있을 때를 이용해 (역사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지역 안정을 위해서도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점잖게 한마디 하는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선제적으로 제안하자는 의견도 있다. 2008년부터 이어져 온 한·중·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한·중이 반발하면서 지난해부터 중단된 상태다. 조 교수는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이 미국의 중재에 우리와 일본이 응한 수동적 모습이라면, 한·중·일 정상회담은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는 적극적 전략이 될 수 있다”며 “중국과 미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권호·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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