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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로렐라이 답사 간절했지만 … 베를린 장벽서 한국의 판문점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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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가 1964년 12월 10일 서독(현재 독일) 방문 중 함본 광산을 찾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했다. [대한뉴스 캡처]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순방(25~28일)을 앞두고 50년 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독 방문을 마치고 쓴 글 ‘나의 방독소감’이 주목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육 여사는 “솔직히 말해 독일 하면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하늘이 안 보이는 라인의 공장지대나 루르의 탄광지대가 아니라, 내가 소녀 시절부터 즐겨 읽은 하이네의 시 속에 곱게 흐르는 라인강이며, 낭만과 전설 속에 고요히 라인강을 굽어본다는 로렐라이 절벽이었고, 이런 것들을 실지로 답사해보고 싶은 바람은 간절한 것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육 여사가 맞이한 현실은 한국과 같은 처지였던 분단된 독일의 아픔, 만리타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고생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고단한 삶이었다.

 12월 11일 베를린 장벽을 둘러본 육 여사는 “전망대 위에서 멀리 동부 베를린을 넘어다보며 나는 우리 한국의 판문점을 생각했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오던 무수한 사람들이 당한 가지가지의 참상이 실지로 눈에 보이는 듯하여 여자다운 울적함에 젖었다”고 토로했다.

 하루 전인 12월 10일 함본 광산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500여 명을 만났을 때를 육 여사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육 여사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좀 더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웃음을, 포근한 인정을 나눠줘야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의 환성 속에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가슴에 맺혀오는 무엇인가 뭉클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시야가 뽀얗게 흐려지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가슴을 두드린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또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12세였다. 육 여사는 3남매를 떠올리며 “‘너희들에게 선물을 사다주지 않을 거야’라는 나의 간곡한 타이름에 선선히 응해 준 우리 세 꼬마들에게 흥미진진한 로렐라이의 전설이라든지 이야깃거리들을 잔뜩 안겨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여 아이들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다”고 어머니로서의 아쉬움을 담았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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