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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우선공천' 퇴색시키는 계파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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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21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장에 김무성 의원이 등장했다. 당직자도 아닌 김 의원이 나타나자 기자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핵방호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는지 살펴보러 왔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 의원은 회의 직후 홍문종 사무총장을 만나 “여성우선공천 지역 선정을 놓고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두고만 보느냐”며 “합리적으로 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김 의원이 언급한 ‘비합리적인 일’은 부산 사상구 대신 남구를 ‘여성우선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지역구 의원 입장에선 여성우선공천 지역으로 선정되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뜻한다. 부산 남구는 김 의원의 전 지역구이자 현재는 그와 가까운 서용교 의원의 지역구다.

 물론 서 의원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공천권 때문에 반발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내에선 한 중진 의원이 서 의원에게 "나와 함께 정치하자”고 제안했으나 서 의원이 이를 거절한 후 남구가 여성우선공천지역 대상이 됐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서 의원은 “부산 남구는 특정 의원이 사천(私薦)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대로 진행될 경우 탈당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여성우선공천 지역으로 서울 종로·용산·서초구, 부산의 중구, 대구 중구, 경기 과천·이천시를 확정했다. 여기에 서울 강남, 부산 남구·사상·해운대, 경북 포항, 대구 북구 중 한두 곳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쉽게 결론을 못 내고 있다.

 부산 남구뿐 아니라 경북 포항도 공천 신청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김정재 후보가 친박 인사로 알려지면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강덕 전 해양경찰청장 등 남성 예비후보자 5명은 탈당 후 무소속 단일후보를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당 안팎의 불만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도 “여성우선공천 제도가 구색 맞추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여성우선공천 제도가 논란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필요성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아직 여성에겐 정계 진입 장벽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다만 과정이 공정하고 일처리가 매끄러워야 한다.

하지만 거꾸로 가고 있다. 제도 도입의 취지가 계파싸움 때문에 퇴색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선공약 파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에 대한 공천권을 유지하기로 했다. 약속 위반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겨우 이런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하나.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