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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로봇산업 최전선에 서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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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앤디 루빈(오른쪽)은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린다. 안드로이드는 2010년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OS로 채택됨으로써 세계 시장 진출의 날개를 달았다. 2010년 6월 8일 서울에서 열린 ‘갤럭시S’ 출시 행사에 참석한 앤디 루빈. [중앙포토]

지난 2월 2일자 이 지면에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마크 레이버트 창업자를 소개한 바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구글이 최근 6개월 안에 인수한 여덟 번째 로봇 개발사다. 관련 자료를 찾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글의 로봇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앤디 루빈(Andy Rubin·52) 부사장이 못 말리는 로봇광이라는 점이었다.

구글을 모바일 시대 최강자로 바꿔
앤디 루빈이 누구인가. 구글의 오늘을 있게 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Android)’의 아버지다. OS란 기기(하드웨어) 관리뿐 아니라 각종 응용프로그램 실행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다. 그러니 OS 없는 스마트폰이란 그저 부품 덩어리에 불과하다.

오늘날 세계 스마트폰 OS 시장은 사실상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과 ‘iOS’를 채용한 애플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OS 시장에서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9%에 이른다. 반면 iOS 점유율은 15.2%에 불과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무료 배포를 통해 삼성·LG 같은 세계적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한 반면 애플은 오직 아이폰에만 iOS를 장착하는 폐쇄성을 고수한 탓이다.

이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안드로이드 무료 배포, 즉 ‘오픈 소스’ 정책은 앤디 루빈이 이를 처음 주창한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일종의 ‘미친 짓’으로 간주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비전을 밀어붙이는 그를 알아봐준 이가 있었으니,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었다. 이들은 앤디 루빈이 창업한 ‘안드로이드’란 회사를 2005년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루빈은 구글 직원이 돼 안드로이드 개발을 마무리 짓고 오픈 소스 정책을 완성했다. 대만 HTC를 시작으로 수많은 세계적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를 규합해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휴대기기 비독점 연합)’를 결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글과 안드로이드를 세계 모바일 시장의 최강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이런 그가 구글의 모바일 사업 총괄에서 물러난다는 발표가 났다. 사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걸까, 능력의 한계에 부닥친 걸까. 실리콘밸리 호사가들의 쑥덕거림이 잦아들 즈음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몇몇 미국 언론이 일제히 그의 근황을 알렸다. 지난해 말 구글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가 계기였다. 거래를 주도한 루빈이 ‘구글 로보틱스 연구그룹’을 만들어 차세대 성장동력인 로봇 개발과 사업 기획에 매진하고 있다는 거였다. 아울러 그의 오랜 ‘로봇 사랑’이 새삼 화제가 됐다. 일단 안드로이드 로고(사진)만 해도 연두색 로봇 형태가 아닌가.

실패로 거듭된 샐러리맨 생활
호기심이 일어 옛 자료들을 뒤져봤다.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태생 천재 개발자로 보이는 그가 실은 동부의 평범한 학교를 나와 오랜 기간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 와중에 창업한 회사며 내놓는 제품들마다 매번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운 결과로 이어졌었다는 것이다.

앤디 루빈은 뉴욕 인근의 샤파쿠아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심리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훗날 신용카드 대금 청구서에 전자제품 소개 문구를 넣어 마케팅하는 회사를 차렸다. 덕분에 그의 집은 늘 새 기기들로 넘쳐났다. 일찌감치 기계의 매력에 빠진 그는 뉴욕주에 있는 유티카 칼리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어 처음 구한 직장은 뜻밖에도 독일의 광학 전문 제조기업 칼 자이스(Carl Zeiss)였다. 로봇 엔지니어로서 컴퓨터와 광학 측정기기 간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근무지를 따라 스위스로 이주한 뒤 좋아하는 로봇 연구를 하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건 휴가지인 케이맨 군도에서 우연히 만난 애플 직원 때문이었다. 그의 권유로 애플에 입사한 루빈은 창조적 상상력이 넘치는 엔지니어들에 둘러싸였다. 4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한 곳 역시 애플로부터 분사한 휴대용 기기 개발업체 ‘제너럴 매직’이었다. 사무실에 2층 침대를 가져다놓고 미친 듯 일했다. 회사는 1995년 기업 공개에 성공했지만 매출은 형편없었다. 이들의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간 탓이었다. 실망한 엔지니어 몇이 다시 회사를 나와 ‘아르테미스 리서치’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의 결합을 시도한 이 회사는 제너럴 매직과 합병된 후 ‘웹(Web)TV’라는 이름으로 97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다시 대기업 MS 직원이 된 루빈은 직장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직접 개량한 로봇에 웹캠과 마이크를 달아 회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하는 유의 장난을 치며 소일했다. 99년 결국 회사를 그만둔 그는 실리콘밸리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세냈다. 일본 여행 중 구해온 로봇과 그 모형들로 내부를 장식한 뒤 자신과 비슷한 괴짜 엔지니어들을 불러모아 밤새 토론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데인저’다. 아이디어는 이랬다. ‘모바일 기기를 만들되 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나눠준 뒤 이동통신업체가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서비스 요금의 일부를 나눠 받는다’.

“무료 OS는 미친 짓” 손가락질 이겨내
데인저는 초기 스마트폰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사이드킥’을 내놨고, 이는 구글의 두 창업자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역시 매출은 형편없었고 루빈은 결국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쫓겨난다. 얼마 뒤 회사를 떠난 그는 또 한 번 창업에 도전한다. 오픈 소스 OS를 전면에 내세운 기업, 안드로이드였다. 루빈은 그간 번 돈을 모두 이 프로젝트에 쏟아넣었다. 급기야 월세도 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티던 그는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얼마 뒤 구글은 이 회사를 조용히 인수한다. 그리고 3년, 루빈은 구글의 전폭적 지원 하에 자신의 신념과 비전을 현실화해냈다. 안드로이드는 그저 돈 받고 파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누구나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됐다. 기기 제조업체부터 앱 개발자까지 모두를 끌어안음으로써 놀라운 부가가치를 생산해냈다. 래리 페이지의 말마따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 돈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통찰은 적절하고 타당했다”.

그리고 이제 루빈은 다시 로봇이란 신개척지에서 남다른 일을 해내려 한다. 애플·MS·구글이라는 세계 3대 IT기업에서의 경험, 거듭된 실패와 시행착오로부터 얻은 교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능력, 안드로이드 연합을 기어코 꾸려낸 리더십과 설득력. 이만하면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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