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탈「유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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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총회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를 인종차별주의의 한 형태로 규정하자는「아랍」측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편적 세계기구로서의 본래의 창설취지를 크게 벗어났다.
「시온」주의가 인종차별주의라면 「팔레스타인·게릴라」의 「이스라엘」박멸론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때문에 보편성을 생명으로 하는 국제기구 「유엔」으로서는 그런 추상적 개념규정 따위엔 아예 개입을 하지 말든가, 아니면 엄정중립을 지켜야 옳을 것이다.
중동평화의 실마리는 배타적 민족주의에서가 아니라 공존적 현실주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그런 점에서 「유엔」은 「시온」주의나 「아랍」국수주의의 어느 한편에 치우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엔」총회가 「시온」주의의 이복형제라 할 또 하나의 극단주의만을 두둔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유엔」자신의 권위와 공정성과 장래를 위해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총회결의 직후 미국 상원이 만장일치로 미국의 「유엔」참여 재고를 결의한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평가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은 이미 ILO탈퇴 통고로써 「유엔」의 변질과 기능마비에 대해 항의의 첫 신호를 보낸 바 있다. 「유엔」의 탄생을 위해 주도적인 산파역을 담당했던 미국이 오늘날에 와서「유엔」에 의해 오히려 집단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고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미국이 느끼고 있는 배신감과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 와서 좌경 비동맹권과 공산권의 투표성향은 갈수록 이성을 벗어나 마치 운동경기장의 응원단과도 같은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자세히 검토도 해보기 전에, 미국에 대해 불리한 것이라면 『태양이 지구 둘레를 공전한다』는 결의라도 무조건 통과시킬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의 투표성향이다.
그러한 무분별과 무책임, 그리고 독단적인 횡포가 계속 「유엔」분위기를 지배한다면 분쟁 조정자로서의 「유엔」의 권위는 더 이상 지탱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때문에 미국은「유엔」의 정상적인 기능과 토론분위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서 미국이 「유엔」에 대한 재정지출을 정지한다거나 토론참가를 거부한다는 것은 좌경 비동맹권이나 공산권에 대한 일종의 경고와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유엔」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지원 없는「유엔」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국가로서의 미국으로서는 그 정도를 지나쳐서 「유엔」에서 완전히 탈퇴하거나 「유엔」을 적대시하는 일은 현명한 일이 못될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기가 쉽다.
그보다는 차제에 많은 이성 있는 세계지도자들과 더불어 「유엔」의 정상화를 위한 합리적 개선방안에 대해 진지한 의견교환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창립 30년을 맞은 「유엔」은 이제 국제적 중우정치와 맹목적인 군중심리로 인해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자유세계가 독단과 선동에 굴함이 없이 의연한 이성적 대안을 관철시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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