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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케이스를 대하는 네 가지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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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휴대전화 케이스, 휴대전화만큼이나 많이 쓴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면서 확 늘었다. 재질도 모양도 다양하다. 옆면만 감싸는 것, 뒷면만 보호하는 것, 지갑처럼 열고 닫는 형태도 있다. 휴대전화 싸개가 휴대전화보다 부피가 큰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이 쓰는 계층은 의외로 4050세대다. 정보기술 용품업체인 제누스 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의 73%가 케이스를 쓴다. 2030은 67%다. 50대 후반 지인은 “떨어트려서 휴대전화가 깨지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절약 교육을 세게 받았던 세대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서비스를 해주니까 액정 보호 필름과 케이스를 별생각 없이 쓰는 경우도 꽤 된다. 20대는 다르다. 케이스가 패션이고 문화다. 휴대전화만큼 케이스를 고르는 데 공을 들인다. 제누스 조사에서도 2030세대는 케이스 고르는 기준으로 최신 디자인·캐릭터, 계절에 맞는 색깔 등을 꼽았다. “휴대전화 케이스가 지갑 대용”이라는 실용성도 녹아 있다.

 휴대전화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은 또 다르다. 휴대전화 그대로일 때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만든 걸 왜 꽁꽁 싸매느냐고 반문한다. 케이스 벗기고 쥐어보면 쥐는 맛이 다르긴 하다. 한 손에 쏙 들어온다. 보호 필름을 벗기면 화면 반응도 훨씬 빠르다. 더 놀라운 건 휴대전화 만드는 기업이다. ‘기껏 만들었더니 케이스를 씌워’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괜한 걱정이었다. 케이스를 쓰는 사람이 많은 시장 상황을 기업은 놓치지 않았다. 최근에 나온 휴대전화는 아예 케이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 케이스를 열지 않고도 안이 보이도록 창을 낸 후, 그 창에 맞춰 시간·메시지 등 기본적인 내용이 보이도록 휴대전화 화면을 조정했다. 역시 장사꾼은 다르다.

  사실 애초 생각했던 글 제목은 ‘휴대전화 케이스를 벗기자’였다. 혹시 우리가 부수적인 것으로 인해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얘길 하려고 했다. 중요한 건 휴대전화인데, 여기에 케이스를 씌워 휴대전화의 본 맛을 못 느끼는 건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 뭔가 모범 답안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이리저리 알아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답은 없었다. 누구나 자신이 좋고 편한 방법으로 케이스를 쓰거나 안 쓴다. 기업은 알아서 변화에 맞춰 변신한다. 케이스를 쓰면 쓰는 대로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낡을 때까지 쓰든 철마다 바꾸든 그게 다 답이다.

 휴대전화 케이스 고르기보다 중요한 일은 말해 무엇하나. 답을 주지 않아도 모두 제 길을 찾아간다. 일탈과 폭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급증을 가지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온 시스템과 울타리는 꽤 견고하다. 벗길 건 케이스가 아니라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바라건대, 자녀에게 대기업 공채라는 취업의 모범답안을 강요하는 부모도, 정답 만드는 게 일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도 휴대전화 케이스 한번 만져보길 바란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