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아랑곳없는 「베이루트」시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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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쟁을 겪은 시민들의 생리는 이해하기가 극히 곤란하다.
한마디로 자포자기라 할까, 유유자적이라고 할까.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월남전에서 전쟁심리를 맛보았겠으나 「레바논」사람 역시 종교전쟁에 시달린 탓인지 우리가 보기엔 무감각할 이만큼 그들 특유의 생활을 즐기고있다.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 「비키니」차림으로 수영을 즐기는 여인, 한가롭게 낚시줄을 드리운 채 찌만을 쳐다보는 노인, 노변「카페」에 앉아 「터키」식 「코피」를 마시는 연인들-.
싸움만 없다면야 과연 「베이루트」구나 하겠지만 총알이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전쟁 속의 일상 생활이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해될 수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싸움이 단 하루라도 멈추는 날이면 젊은 남녀들이 점심때부터 영화관에 몰려 초만원을 이루며 세계각국의 무희가 온갖 교태를 다하는「나이트·클럽」이 새벽녘까지 흥청거린다. 그러나 이쯤은 싸움이 없는 경우, 설사 전투가 치열하다 해도 그들의 생활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우선 5백m 전방에서 교전중이라 해도 빵집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있는 대열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젊은 여자라도 차를 타고 지나가면 휘파람만을 불어댄다.
싸움터에서는 사람의 호기심만을 키워주는지도 모른다.
싸움이 잠시라도 멎었다 하면 많은 차량들이 싸움터 주변을 이곳저곳 누비면서 피해상황을 직접 눈으로 살핀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싸움을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
바로 「아파트」앞 1km 전방쯤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경우 호기심 많은 주민들은 「발코니」에 나와 마치 야전군사령관이나 되는 것처럼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교전자들을 찾으려 한다. 심지어 저격수 소탕전이라도 벌이게 되면 동네 꼬마들까지 망원경을 메고 뛰어나올 정도로 누구나가 호기심뿐이다.
무신경일 만큼 태연자약하다고 평했더니 어느 「레바논」친구 가로되 『총알은 언제나 나를 피할 것』이라고 「알라」의 후예다운 말만을 되풀이한다. 【레바논=이근량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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