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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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엔」도 이제는 30세의 장년기에 들어섰지만, 갈수록 속병이 심해져 가고만 있는 것 같다. 살림도 엉망이다. 「발트하임」사무총장이 발표한 바로는 앞으로 2년 동안의 「유엔」 예산은 7억3천7백만「달러」. 현재로선 어떻게도 이 돈을 메울 길이 없다. 「유엔」은 기념우표를 발행해서 연간 2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이밖에도 각국의 할당금과 자발적인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게 신통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해마다 적자만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키프로스」에 있는 「유엔」평화유지군의 경상비도 메우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유엔」 창설 이후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오던 나라는 미국으로 25%나 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미국도 돈을 내기를 꺼리고있다.
「유엔」총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세계경제 생산고의 5%밖에 되지 않는 나라들이 총회의 3분의2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리스천·사이언스·무니터」지가 사설에서 말한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해 총회에선 남「아프리카」가 총회 참가권이 정지 당한 일까지 있다. 그런가하면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아가파트」의장이 국가 원수급의 대접을 받고 초청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은 아무 소리를 못했다. 「스카리」 전 미 「유엔」대표의 말을 빌면「제3세계의 다수횡포」는 날로 늘어만 가고있는 것이다
지금 「유엔」가맹국은 1백42개. 그 중에서 비동맹이라는 이름의 제3세계는 1백10개국이나 된다. 이들이 똘똘 뭉치면 「유엔」 안에서 못하는 일이 없다
지금 38층의 「유엔」 건물도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서 이제는 백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들은 곧잘 「유엔」의 회의까지도 유산시킨다.
가령 지난해 9월17일에 개최된 후 11월1일까지 총회와 각종위원회가 2백38건이나 있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제시간에 회의가 시작된 것은 8건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낭비된 「유엔」시간이 80시간이 넘는다. 회의 중에 각국대표들이 빨리 끝내자고 성화를 부려서 낭비된 시간도 80시간이나 된다
「부테프리카」총회 의장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의 회기 중에 심의된 1백건 이상의 의제 중에서 종결을 본 것은 불과 14건밖에 안 된다
이렇게 낭비한 시간이 지난 73년에는 무려 1천시간이 넘었다.
더우기 아무리 대표들이 장광설을 늘어놓아도 이를 막을 힘이 사회자에게 없는 것이다.
『전쟁이 여기 저기서 터지는 것보다는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처칠」이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새는 너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바람에 「유엔」의 권위는 형편없이 떨어져만 가는 것 같다. 이번에 「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를 놓고 서방측 제안과 공산측안이 동시에 통과되는 이변을 낳은 것도 이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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