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격한 규율·풍부한 상상력|「런던·심포니」상임 지휘자 「앙드레·프레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수석지도자 「앙드레·프레빈」(46)이 이끄는 세계최고수준의 교향악단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오는 11월 12일과 13일 내한공연을 갖는다. 유쾌하면서도 고상하고 정열적이면서도 섬세함을 갖춘 이 대교향악단은 1904년 창단 즉시부터 명교향악단으로 군림해왔지만 「앙드레·프레빈」이 지휘를 맡은 후인 70연대 들어서서 더욱 특출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런던」의 박중희 특파원을 통해 지휘자 「프레빈」의 면모를 소개한다.
「비틀즈」를 연상케 하는 긴 머리의 미남이며 영국인들로부터 『구김살 없는 사교계 신사』라는 평을 듣는 「프레빈」은 「클래식」음악계서는 상당히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10여년전만 해도 그는 「할리우드」에서 당대 1급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약한 것이다.
「클래식」음악하면 독일인이 먼저 연상되듯 「프레빈」도 현재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원래 독일인이다. 1929년 4월 6일 「베를린」에서 「피아노」를 지극히 좋아하는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4세때부터 아버지와 「피아노」연탄을 했다.
9세때 유대계라는 이유로 「히틀러」정권의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일가를 따라 「프레빈」도 「파리」로 가, 유명한 음악학교 「콩세르바톼르」에 입학했다가 몇년후 미「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미국에서의 「프레빈」일가생활은 궁핍해졌다. 아버지가 영어를 못해 변호사업을 할 수 없었다.
생활을 위해 「프레빈」은 16세때 미「메트러·골드윈·메이어」(MGM)사의 음악부에 입사하였다. 29세에 MGM사를 나왔지만, 이때의 입사가 「프레빈」을 영화음악가로 입신케 했다. 영화 『지지』(58년)로, 『「포기」와 「베스」』(59년)로, 『「이르마」아가씨』(63년)로, 『마이·페어·레이디』(64년)로 무려 네 차례 「아카데미」영화음악상을 획득할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다.
「프레빈」은 그러나 영화음악에 만족치 않고 당초 어린 시절부터의 지망이었던 「클래식」음악을 위해 30세때부터는 미국 여러 지방의 중·소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시작했다. 31세때 『지휘에 전념하겠다』고 공표했을 당시 세계 악단은 『지휘자가 하나 더 늘겠구나』라고 보아 넘겼지만 지휘자로서의 그는 급「템포」로 성장했다.
65년 RCA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을 「런던·심포니」와 녹음하기 시작, 이후 3∼4곡의 녹음을 성공적으로 끝낸 그는 67년부터는 「런던·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치 않고 영국 BBC「라디오」의 인기「프로」『무인도의 「레코드」』란 「프로」에 출연, 첫째 희망은 「런던·심포니」의 수석지휘자라고 꼽은 그는 그 희망대로 68년부터는 수석지휘자 자리를 확보했고, 또 미「휴스턴·심포니」의 지휘자로도 겸직했다.
그러나 「휴스턴·심포니」에서는 1년만인 69년 해임되었다. 배우 「프랭크·시나트라」의 전 부인이며 당시 22세이던 여배우 「미아·팰로」(『영·러브』등 출연)와의 「스캔들」이 그 이유.
「프레빈」은 엄격한 규율·상상력이 가득 찬 지휘를 하는 지휘자로 이름이 나 있지만, 특정 「스폰서」가 없어 자주운영을 해야 하는 「런던·심포니」의 PR에는 상당한 재간을 가진 것으로 이름나 있다. 71년 당시 수상 「에드워드·히드」를 끌어내 자선연주회 지휘를 맡긴 것은 대표적인 예.
내년 가을부터는 「피츠버그·심포니」의 음악감독직도 맡게될 「프레빈」은 실력 있는 젊은 「솔리스트」들을 발굴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런던=박중희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