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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련<제47화>나의 학생운동 이철승|탁치위한 미소공위에 민족진영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적기를 뽑아라>47년5월21일 재개된 미소공위는 또 다시 정국을 들끓게 했다. 민족의 양거두 이승만 김구는 신탁통치와 독립정부와는 서로 모순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공위참가를 거부했다(5월22일).
그러나 한민당은「공산책략과 강대국에 의한 임명식, 정부수립을 저지키 위해」공위참가를 결정했다 (6월10일).
민족진영 내부에 갈등이 생긴것이다.
그러나 공위참가 마감일(6월23일)을 앞두고 남한에서는 4백61개의 단체가, 북한에서는 36개의 단체가 공위에 참가신청을 냈다.
당시 남북한 총인구는 2천5백만. 그런데 공위에 참가신청한 단체의 총인원은 2중등록 등으로 무려 7천만이나 돼 「난센스」를 빚었다.
이런 시국을 맞아 전국학련은 6월23일 대대적인 반탁시위를 벌일것을 계획했다.
6월23일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절이자 서윤고선수가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귀국하는 날이어서 온 겨례가 감격하고 환호하는 들뜬 분위기를 이용키로 한것이다.
나는 서울의 10개 지부는 물론 각도연맹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유는 「서윤복선수환영 국민대회」를 갖고자 한다는것.
팔도사나이들이 속속 상경했다. 경기 이계송(인천상) 강원 박광근(춘천중) 충북 김진영(공주대)충남 공병주(공주중) 전북 고병조(군산해양대학) 전남 박선기(광주사) 경북손문창(대륜중) 경남 한남(동아대) 제주금호산(제주농) 등-·
그러나 미군경당국은 「행정명령 제3호」로 공위개최중 집회나 시위를 금했다.
나는 1진은 서윤복선수환영대회에 투입시키고, 주력부대는 종로「화신」근처에 배치해 무허가 「데모」를 하기로 했다.
드디어 6월23일.
정오 「사이렌」이 불자마자 화신안에 대기하고 있던 오홍석(고대) 이병한(공대) 홍관직(간대)이 총알처럼 튀어나오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잇따라 보신각 뒤의 경남북「팀」이 박배근(서울농대) 이룡택(대구농) 등을 선두로, 「파고다」공원안의 전남북「팀」이 장정직(광주의대) 김귀진(목포중) 등을 선두로, 지금의 「신신」뒤에서는 계덕찬(고대) 고병현(주양공)등을 선두로 한 서울「팀」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순식간에 종로 네거리는 만세의 함성이 들끓구 인파가 꽉찼다.
대열은 「하나, 둘」을 외치며 군정청 쪽으로 몰려갔다.
마침 그때는 군정청(현중앙청)에서 열렸던 선수환영대회가 끝날 즈음이었다.
대열은 「서윤복 만세!」를 부른 다음 즉각 구호를 바꿔 「탁치반대」를 외쳤다.
대열이 되돌아 나올 때는 환영식에 참석했던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엄청난 군중시위가 됐다.
미군 MP와 수도청 경찰이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그러나 손을 쓰지 못하고 호루루기만 불었다. 군중은 세종로일대를 단숨에 휩쓸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양패로 갈렸다.
조병후(고대) 김수룡(공대) 임영철(동대) 김진근(국민대) 등 별동부대는 정동 소련대사관으로, 본대는 공위가 열리는 덕수궁으로 직행했다.
시청앞 광장에는 미군이 장갑차까지 동원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고, 경찰은 장택상청장의 직접지휘를 받으며「데모」저지에 나섰다.
특히 대막문앞에는 미군MP가 총에 착검하고 늘어서 대비했다. 그러나 우리는 「스크럼」을 짜고 「결사반탁!」을 외치며 밀어 붙였다.
이 와중에서 장택상청장이 말에서 떨어졌다. 학련의 돌격조 박혜호(조전) 오정환(배재) 김만영(중동) 조승배(중앙) 등이 대꼬챙이로 창낭이 탄 말 궁둥이를 찔러버린 것이다. 웃지도, 울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급히 자리를 피해 대한문 앞으로 군중을 몰아가는데 뒤의 일각에서 『옳소!』 소리가 터졌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애국부인회의 박순천여사가 언변을 토하고 있지않은가.
『우리의 사랑하는 학생들이 반탁시위에 앞장서는데 시민들도 총궐기해서 투쟁에 나서자.』 열띤 연설에 박수도 우레같이 터졌다.
그 순간 미군 「탱크」1대가 지금의 대법원쪽에서 서서히 군중을 헤치며 나타났다.
금방 발포라도 할 것 같은 위협자세를 드러냈다. 바로 그 뒤에는 공위 소련대표 「스티코프」일행이 탄 「지프」가 적기를 나부끼며 뒤따랐다.
그들은 공위에 참석차 대한문으로 들어가는 참이었다.
그 순간 학련의 특공대 허반(공대) 이철우(국민대) 주남성(국학대) 최동근(서울사범) 완면(경복)등이 『적기를 뽑아라』는 고함을 치며 그들의「지프」에 돌·모래를 마구던졌다.
돌 두개가 「스티코프」머리에 거의 명중되고 말았다. 「스티코프」차는 황급히 속도를 내 대한문안으로 사라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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