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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여러 신문 있어야|영「데이비드·에스터」<업저버 주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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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라디오」와「텔레비전」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또 이들 매체는 어느 정도 국가로부터 통제되는 게 통례다. 따라서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시민이 자기 나라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숙고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신문의 역할은 풍부하고 진실 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문은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아울러 견해를 제공한다. 신문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필자의 능력이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정통하고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신문의 기능으로서는 2차적이긴 하지만 보도의 기능만큼 중요하다.

<견해제시도 주요기능>
영국신문이 당면한 가장 긴급한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다. 제작비용은 지출능력에 비해 줄곧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현대적 인쇄기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신문들이 경제적으로 더 활력을 갖게 되려면 기계마다 필요한 인쇄공의 비율을 훨씬 줄이도록 허용돼야 할 것이다.
영국 신문 계는 노조원만이 신문에 집필할 수 있게 하는 독점 형태를 구성하려는 영국신문노조의 요구로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이 문제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몇몇이 검토하고 있는데 극히 중요성을 갖는 점이다.
우리는 또한 먼 장래에 노동당이 지금처럼 사유화·독립 화 된 신문산업을 당내좌파의 주장에 따라 각분야의「저널리즘」기업가가 이용할 수 있는 공영화된 인쇄설비로 대체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순수한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제작수단을 스스로 관리하는데 있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으며 정부가 신문제작 설비의 이용자를 통제하려는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30년 동안 발행 부수가 3배로 늘어난「업저버」지 같은 신문의 상업적인 측면이 어째서 어려워졌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금세기동안 서구전역에서 그토록 많은 신문이 경영문제로 사라져 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신문과 상점을 비교하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상점들의 숫자 역시 줄어들고 있다. 소규모 상점들은「슈퍼마키트」나「체인스토어」등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조그맣더라도 전문화되거나 한 지역 안에 경쟁상대가 없는 상점들만이 살아남고 있다.
신문의 경우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런던」에 살지 않는 영국인의 대다수는 통상적으로 하나의 신문「그룹」에 속하는 석간신문 하나만을 구독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런던」신문들은 적자를 내면서 이러한 지방지로부터의 수익이나 자기네「그룹」의 유류·관광·신문인쇄이익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신문과 상점의 동·이점>
만약 신문사가 상점주들처럼 철저하게 상업적인 태도로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아마 이내 2∼3개의 전국일간지밖에 남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신문발행을 중지하고 사무실을 임대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물론 상점과 비슷하게 된다면 큰 일이다. 불과 몇 개의 대규모 상점들은 고객들에게 더욱 효과적인「서비스」를 할 수도 있겠지만 2∼3개의 전국 일간지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신문이 너무 적어 대중의 의견과 기호의 중심점을 반영하지 못하면「자유언론」에서의 정곡은 불충분하게 된다.
대중의 수요가 많지 않더라도 외신·국회·정치·사법·산업 및 재정에 관한「뉴스」를 상세하게 어느 누구에게나 제공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 분명히 긴요한 일이다. 대중생활에 관한 정보의 전달이 정부의 통제로 묶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관찰자들에 의해 여러 가지 정보들이 공급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자유포장경제가 민주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신문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현재 세계에서 자유로운 신문이라는 것도 자본주의나 혼합경제체제의 민주국가에서만 발행되고 있다는데 비추어 이 현실은 안타깝다. 공산국가의 신문들은 진정 자유롭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 공산사회라 하더라도 일당체제국가에서는 신문이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대다수 아시아 국가·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
그러고 보면 일부 인사들은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서구 류의 국가들의 신문들만이 현존하는 자유로운 신문이다.

<민주주의에 기여기대>
그러나 이들 신문이 반드시 변변치 못한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쳐 미국대통령을 사임케 한「워싱턴·포스트」지의 역할은 자유기업 경제체제에서의 신문이 다른 사회체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신문이 정치적 독립성을 손상 받지 않도록 고전적 자본주의가 수정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이미 오른 수입인쇄기재의 가격과 외적여건에 따른 광고시세 변동으로부터의 수익문제와 함께 이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분명히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신문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조금이 자의적으로 배정된다면 차별의 위험이 따라 결국 신문의 독립성이 위태롭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신문들에 대해「일률적인 보조금」이 지급된다면 이 자금이 세금으로 환수되지 않는 한 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신문에 대한 공금의 낭비가 될 것이다.
상점과 달리 신문은 정치「뉴스」와 여론의 매개체다. 더욱이 신문은 우리문화의 한 부분이다. 신문들이 지방석간지와 소수의 대규모 전국지로 줄어든다면「아이디어」의 주요광장은 상실되고 정보의 대중전달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한국신문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정치적 자유와 의회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수의 다양한 신문, 다양성은 자유의 절대적인 요체다)는 정치적 자유에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지난 2차 대전이레 독일과 프랑스가 이룩한 민주주의는 분명히 몇몇 우수하고 완전히 독립적인 신문들의 대단한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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