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냉각2년」청산…한일협력 재정립|제8차 정기각료회의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년9개월간 미뤄졌던 한·일 각료회의가 열려 7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양국 각료가 무릎을 맞댔다. 그러나 관계정상화의 상징적 의미와 아울러 향후 경제협력의 큰 방향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던 회의였다. 이번 회의의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의 의미를 알아본다.

<정치적 측면>일, 「안보」엔 우회적 후퇴|북괴의식·국내정치사정 때문인 듯
김동조 외무장관은 15일 밤 일본대표단을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서면서『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자체가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회의개최자체의 상징적 의의를 가리킨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시기적 의의에 비해 경제분야의 실리와는 달리 안보·외교 면에선 뾰족한 득은 적었다는 실토라고도 해석된다.
그 상징적 의미는 지난 7월 양국외상회담의 정치적 타결이 그 동안에 있어왔던 양국관계 파행을 수술했던 만큼 이번 회의 개최로 두 나라 관계는 제 걸음을 되찾아 정상궤도에 올랐음을 가리킨다.
반면 안보·외교 면에서의「무득」해석은 북괴의 남침위협유무 등 한반도 현상인식과 한국 안전의 대일 영향을 규정한「한국안보」조항이 공동성명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지 않다는데서 비롯된다.
한국안보는『일본안보에 긴요하다』는「닉슨」·「사또」성명의「한국조항」이 한국안보를 통한 한반도평화가『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평화·안전에 필요하다』는「포드」·「미끼」의「신한국조항」으로 바뀐 것은 한국안보에 대한 일본의「우회적인 후퇴」라고 여겼던 눈으로 볼 때는 이번 공동성명에 그같은 안보조항이 보이지 않은 것은「명백한 후퇴」일수밖에 없다.
일본이 한반도의 현상인식이나 안보개입을 사실상으로는 확인하면서도 공식표명을 삼가는 것은 평양을 잠재적 연방으로 접근하는 일본의 대 북괴 외교적 포석과 야당 및 자민당좌파를 의식한 국내정치사정 때문.
외무부는「안보」조항의 누락을 △군사동맹이 아닌 양국관계 △미국과 같은 대한 안보개입능력이 일본에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공동성명 3항에 나타난 양국협력관계의 대동「아시아」평화·안정에 대한 공헌인식조항은 기존「안보조항」을 바탕으로 하고있다고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일본은 북괴와의 통상대표부 설치·민간어업협정 체결 희망 등 남북한 등거리 외교 움직임을 비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 측은 이번 외상 별도회담에서 일본의 북괴접근을 경고하면서도 성명엔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은「안보」조항누락과 기저를 같이하는 일본측의 북괴를 의식한 타산적 배려 때문인 것 같다.
서방측「유엔」결의안의 공동제안국인 일본이 벌써 공산안과의 타협을 들먹여온 것은 자국내 정치사정이 큰 이유였던 만큼「유엔」등을 통한 협력을「유엔」개막 목전에 공동성명으로 못박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남규 기자>

<경제적 측면>「정부주도」합의가 큰 수확|구체적 경협 내용 회피로 기대 반감
제8차 한·일 각료회담의 경제적 의의는 지난 10년간 양국경제협력관계의 주축을 이루어온 청구권 협정이 종료되는 싯점에서 새로운 경협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는데 있다.
양국대표는 공동성명에서「양국의 선린우호와 경제관계의 강화에 공헌하도록 양국간의 경제협력이 금후에든 행하여지는 것이 소망스럽다」고 밝힘으로써 앞으로도 경제협력관계가 지속될 것임을 명백히 했다.
또 경제협력의 방법에 있어 정부간 실무자급 협의를 통하여 구체적 내용을 결정키로 함으로써 일본측이 민간「레벨」이 아닌 정부주도의 경협을 계속키로 했다는 점에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한편 일본측은 앞으로의 경제협력의 방향이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약속하기를 피함으로써 앞으로 3차 5개년 계획의 남은 기간과 77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5개년 계획을 앞두고 어느 정도 구체적 경제협력 규모의 보장을 받고싶어하는 한국 측에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국 측은 공식각료회담이 열리기 전에 일본에서 가졌던 실무자 회담 등을 통해 이미 제4차 5개년 계획기간 중에 매년 3억「달러」의 공공차관과 2억∼3억「달러」의 상업차관, 합계 5억∼6억「달러」의 자본협력을 요청한바 있다.
또 3차 5개년 계획의 남은 기간 중에 충북선 복선·농업개발·통신시설확장 등 3개「프로젝트」에 2억「달러」내외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구체적 지원내용을 약속 받는데는 실패했다.
일본측의 이 같은 소극적 태도는 물론 복잡한 일본 국내 정치사정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어쨌든 각료회담에 대한 기대에 비해 성과는 반감된 셈이다.
이번 회담에 따라 앞으로 한·일간의 구체적 경제협력 내용은 제4차5개년 계획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서 모두 그때그때 실무자 회담으로 미루어지게 된 만큼 일본측의 지원을 기대하는 한국 측으로서는 몹시 고달프게 되었다.
한국의 관계자들은 일본이 IECOK 대한국제경제협의회의 총회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와 지원 필요성을 시인하고 있는 만큼 구체적 지원 약속이 없어도 이제까지 보다는 지원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과연 일본이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지 두고볼 일이다. <신성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