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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용택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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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적으며 나긋나긋이 산다. [최효정 기자]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실체도 내용도 없는 절망과 괴로움 속을 헤매던 20대 무렵, 나는 죽음이라는 말의 수렁에 빠져 지낼 때가 있었다. 책 한 권 구경할 수 없었던 10대 시절을 보내고 처음 문학과 철학의 세례에 어지러웠던 스물한 살, 나는 비로소 사춘기를 맞았다. 눈송이들이 강물로 날아들던 어느 겨울 강변에서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중 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그 구렁텅이를 빠져나왔다.

 1980년대 초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전주 어느 길거리를 헤매던 나는 아무 인연도 없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사 중에 ‘내가 있으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들렸다. 내 몸과 맘이 확 깨어났다. 그 말은 하느님이 나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한 말이 되어주었다. 지금 내가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오랜 세월 그렇게 나는 새로운 시어들을 만나 깜짝 깨어 되살았다.

 요즘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시에서 또 다른 나를 탄생시킨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꽉 막힌 현실의 무서운 철벽을 뚫을 힘이 어디에 있는가.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지나온 삶이 그러했듯이 남은 내 생이 아깝지 않은가.

 알 수 없으면 두렵고, 시작하지 않으면 겁에 눌려 신음한다. 정직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깨어날 일이다. 김용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