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미관계 정통한 '국제 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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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어려운 때에 큰 일꾼을 잃었습니다."

24일 71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정수(朴定洙) 전 의원에 대해 강원용(姜元龍.86)목사는 이렇게 애도했다. 姜목사는 그를 "외교 전문가이자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姜목사가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고인이 중학생이었던 1947년.

"어느날 저를 찾아왔어요. 제 강연을 들었다며 자신의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강연을 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당돌한 중학생이라고 생각하며 거절했는데 나중에 벽보를 들고 다시 찾아오더라구요. 김천에 이미 강연회 안내 벽보를 붙였다며…. 그의 정성에 어쩔 수 없이 강연을 하게 됐죠."

고인은 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부인 이범준(李範俊.70.전 성신여대 교수)여사와 함께 박사학위를 받을 때 당시 미국 험프리 부통령이 직접 축하 인사를 건넬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다고 한다. 68년에는 험프리 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추천해 총리 특별보좌관을 맡기도 했다.

50년 지기인 이홍구(李洪九.69.중앙일보 고문) 전 총리는 "대학 때부터 한미관계 등 외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친구들을 모아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지도력도 탁월했다"며 회고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 정외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아메리칸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이후 국민대 교수를 거쳐 79년 정계에 입문,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서는 외교문제에 관한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국제 신사'라 불리던 그를 가장 먼저 찾았었다. 김대중 정부에선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성우(成祐.43.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며느리 이주영(43.덕성여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영결식은 27일 오전 9시30분 외교통상부장으로 치러진다. 02-3410-6921.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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