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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지휘라인 드러나나 … '김사장' 입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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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증거조작을 지시한 지휘라인이 어디까지 드러날지는 ‘블랙요원’인 김모 조정관의 입에 달려 있다.”

 서울시 공무원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내린 중간 결론이다. 김 조정관은 지난 10여 년간 ‘김 사장’이라 불리며 동북3성 지역의 협조자들을 관리하고 대북첩보, 간첩 관련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싼허(三合) 세관 답변서를 위조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도 그가 오랫동안 관리해온 ‘고급 정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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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검찰에서 “김 조정관이 간첩혐의를 받던 유우성(34)씨 측 출입경(국)기록과 싼허세관 정황설명서를 건네주며 ‘이를 뒤집을 자료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와 싼허 세관 답변서에 허위 확인서를 발급한 주선양 영사관의 이모 영사, 유씨 사건을 수사한 대공수사팀 수사관 10여 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 조정관이 3개 위조 문건을 입수하는 데 모두 관여한 증거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임을 파악했다고 한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 대공수사팀이 지난해 9월 26일자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로 발급된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중국 내 또 다른 협조자를 통해 건네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조선족 신분인 이 협조자도 김 조정관이 관리해온 정보원 중 한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출입경기록에 대한 허룽시 공안국 명의 발급확인서도 이 협조자가 외부에서 선양 영사관의 이 영사에게 팩스로 보낸 정황도 확보했다.

 검찰은 위조가 확인된 싼허 세관 문서 외에 출입경기록 자체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허룽시가 옌볜자치주 소속이기 때문에 동일한 전산시스템에서 출력, 양식이 같아야 하는데 국정원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은 기본적인 증명서 발급번호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당시 위조에 관여한 이들이 유씨의 생년월일을 제외한 나머지 정보를 몰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작 경위가 어느 정도 규명된 이상 검찰의 초점은 김 조정관에게 지시한 국정원의 ‘윗선’을 찾는 쪽에 맞춰질 전망이다. 검찰은 조만간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부를 예정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 조정관에 대한 신병 확보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하루 전 체포한 국정원 협조자 김씨를 이틀째 조사했다. 그는 지난 5일 자살을 시도하기 전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에서 “(싼허)문서는 진본이 아니고 국정원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유서에는 “국정원은 ‘국가조작원’”이라며 “국정원서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김씨는 이날 조사에서도 이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검찰은 문서 위조 외에도 김씨가 귀국하는 과정과 검찰 수사를 받은 뒤 급작스럽게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 대한 여러 의혹을 밝히는 데도 공을 들였다. 김씨는 중국에서 소학교 교사로 일했고 퇴직 후에는 칭다오 지역 사업가로 활동했다. 주변에 “지린성 소학교에서 교장까지 지냈다”고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탈북자 출신으로는 드물게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칭다오 현지에서는 “탈북자 출신은 교원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는 중국 정부가 지난달 13일자로 “한국 검찰이 제출한 문서 3개가 모두 위조됐다”는 회신을 법원에 보낸 직후 “신분이 노출돼 중국에 있을 수 없다”며 귀국 의사를 국정원에 밝혔다고 한다. 또 국내에 들어와서는 “내가 검찰에 출두해 검찰 측 문서가 모두 진본임을 밝히겠다”며 자진출두 의사를 밝혔다. 실제 1차 조사 때는 그렇게 진술했지만 이어진 2, 3차 조사에서 완전히 말을 바꿨다. 검찰은 심경 변화를 일으킨 이유를 캐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국정원 협조자로 일하면서 중국 정보 당국과 연계된 ‘이중 스파이’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김씨가 국정원에 협력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국정원을 비판하는 쪽으로 돌변한 배경에 대해서도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간첩이 확실하다”고 지목한 유씨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간첩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지도 밝혀낼 계획이다.

정효식·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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