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이슬람권 언론 "美의 침략"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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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이라크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보이던 아랍 언론들이 미국의 대규모 공격에 분노에 가까운 비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공습과 이라크 민간인의 피해가 아랍인을 단결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아랍 언론은 미국의 공격을 아랍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하고 있다.

알제리의 일간지 알마사는 23일 "전세계가 침략행위를 비난하고 있다"는 1면 톱 기사를 내보냈다.

요르단의 일간지 알라이도 이날 "이라크에 대한 침략전쟁에 대해 우리 모두 분노를 느낀다"는 압둘라 국왕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기에는 개전 이후 거세지고 있는 반미.반전 집회가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는 것을 무마하려는 관영 언론의 계산도 있다.

전황 보도에 이르면 많은 아랍 언론은 감정적이다 싶을 정도로 반(反)연합군 일색이다. 이라크 민간인의 참상을 부각하고, 이라크의 전과(戰果)는 대서특필하며 연합군의 피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예멘의 알줌후리야는 23일 '영국 전투기 격추, 40명의 미.영군 포로 발생'이란 제목으로 연합군의 피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시리아의 일간지 알사우라는 더 나아가 "이라크 국민이 야만적인 미사일 공습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저항을 펼치고 있다"는 기사를 이날 1면에 게재했다.

온건 노선으로 분류되는 요르단의 알두스투르도 이날 "바그다드와 바스라에서 10여명의 순교자와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1면에 썼다.

이에 반해 미군이 거둔 승리와 이라크군의 투항 소식 등은 보일 둥 말 둥 처리했다.

일부 방송은 미군의 '만행'을 부각하기 위해선 자극적인 내용도 삼가지 않는다. 아랍의 CNN으로 통하는 카타르의 알 자지라 방송이 특히 그렇다.

자국 정부의 친미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알 자지라 방송은 이번 전쟁 보도에서 적극적으로 '이라크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수일간 이 방송의 인터넷판에는 미국의 공습으로 죽거나 다친 이라크인의 비극적인 모습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머리 윗부분이 터져나간 채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숨진 어린이, 머리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버린 젊은이 등 매우 충격적인 사진들이다.

알 자지라는 그동안 아랍에서는 어느 정도 공정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래서 알 자지라의 이런 보도 태도는 아랍 언론이 이번 전쟁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아랍 언론들은 이번 전쟁에 세계가 동참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친 이스라엘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감행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연합군'보다 '미군 혹은 영국군'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이집트의 대표 일간지인 알아흐람은 23일자 인터넷판에서 "미군과 영국군이 바스라와 나시리야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다"는 톱 기사를 게재했다.

전쟁 전만 해도 아랍 언론은 여러 색깔이었다.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을 포함해 적잖은 국가가 사담 후세인 정권의 축출을 이해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아랍인들의 죽음이 그들을 한 목소리로 몰아가고 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사진 설명 전문>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23일 시민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시위에는 10만명이 참가했다. 한 시민이 든 피켓에는 '세계가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라호르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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