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법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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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농민의 63%가 법의 정당성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한 보고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 사법부에 대한 농민 의식 및 변호사 의식에 관한 조사』라는 김 모 교수의 논문(본지 작보)에서 밝혀졌는데, 이는 농민의 법의식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법에 대한 불신 풍조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법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와 법에 대한 신뢰감 및 법 의존심리의 결여는 비단 농민에게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국민들이 법을 불신하게 되고 준법 정신이 둔화되면 법의 권위가, 실추되어 법적 안전성과 사회적 안정성마저 동요되기 쉬운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로 발전할 위험성마저 있을 수 있다 하겠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의 법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고 법률의 대중화를 기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겠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법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생겨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 원인 중 몇 가지를 들어보면 첫째로 법의 양산을 들 수 있겠다. 「약법 삼장」을 들출 것도 없이 법은 원칙적으로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 법이 법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성마저 몰락한 채 졸속으로 무더기 통과되고 나중에 가서 법적 착오와 하자가 드러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런 법의 이상한 양산 현상은 국민으로 하여금 의회 제도에 대한 회의와 함께 법에 대한 불신감을 갖도록 작용되었다 하겠다.
둘째는 조령모개식 법개정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잘못된 현상에 직면하여 그 원인을 법의 부재나 미비로 돌리는 사고가 곧 법률의 잦은 개폐를 초래함으로써 법으로서의 체통과 존엄성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시 위원조차 법의 개정을 모르고 잘못 출제하여 물의를 빚은 「난센스」까지 있었으니 법률의 전문가 아닌 농민의 대다수가 법조문을 이해 못하고 법에 대한 인식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셋째는 형사 재판의 중형 영향과 그에 수반되는 일련의 조치를 들 수 있는데 이런 것은 형량의 「인플레」현상을 초래할 뿐 아니라 법의 위신을 훼손시키게 되는 것이다.
무기나 20년형의 추상같은 중형을 언도 받고도 고작1, 2년 지나면 석방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니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감이 경감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 하겠다.
넷째는 법 운용 전반에 걸쳐 법률적인 문제가 「법률 외적 요인」에 의해 영향 되었던 점이다. 정실·금력·배경·정책적 고려 등이 법의 공정한 운용을 간혹 방해하기도 했고 법 수용자의 자의나 편견에 따라 이현령 비현령 식의 폐단이 간혹 생기기도 했다.
「법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다」는 체념과 허탈감에 빠진 탄성을 더러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서 연유된다 하겠다.
이와 같은 여러 원인의 작용에 의해 초래된 농민-국민의 법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불식케 하는 길은 과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법에 대한 불신감을 낳게 한 여러 원인을 극복·해결하는 것이요, 동시에 법치주의와 「법의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층 인사들의 각성과 솔선 수범이 요청된다 하겠다.
「읍참마속」의 법의 정신을 발휘하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생활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국민의 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준법정신을 진작시키기 위한 부단한 계몽이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법의 권위는 회복·확립될 것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국민」,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 모든 국민이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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