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양상 따라 시장도 춤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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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라크군이 미.영 연합군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 주 세계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전쟁 랠리'가 멈칫거리고 있다. 국제유가와 금값 등 원자재시장도 이라크 전황(戰況)이 혼미해짐에 따라 소폭 반등하는 등 혼조를 보이고 있다.

주요 외신은 최근 세계 증시의 급등세와 원자재 시장의 하락 안정세와 관련, 투자자들의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24일 오후 3시15분(한국시간) 현재 미국 증시의 나스닥 선물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12포인트(1.10%) 하락한 1,082.50을 기록했으며, S&P 500 선물지수도 비슷한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

일본 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지난 주말보다 240.02포인트(2.93%)나 뛰어 오른 8,435.07을 기록했으나 이는 지난 주 말 춘분절 휴장에 따른 상승분을 뒤늦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소폭 하락했다.

국제유가와 금값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이라크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소폭 반등했다.

뉴욕상품거래소(NYMEX)의 시간외 전자거래에서 이날 오전 9시19분(한국시간) 현재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5월물 가격은 지난주 마지막 거래가격보다 79센트(2.9%) 오른 배럴당 27.70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시장에서 금 현물가는 장중 온스당 3달러(0.9%) 오른 3백29.05달러에 거래된 뒤 상승 폭이 꺾여 오전 10시3분 현재 지난 주말보다 0.2% 오른 3백26.55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은 최근 세계 증시의 급등세는 투자자들이 1991년 걸프전에서 배운 잘못된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24일 보도했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걸프전 때와 같은 주가 급등을 예상한 덕분에 주가가 올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AWSJ는 투자자들이 마치 이라크전으로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기업의 재무제표가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전쟁이 종전으로 치달을수록 주가는 오히려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설령 이라크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종전 이후 거시 지표나 기업 실적과 같은 경제의 펀더멘털이 시장에서 더 부각될 것이기 때문에 증시는 더 침체될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예상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도 국제 석유시장과 세계 증시가 이라크전이 시작되자 도취감에 빠져 신속하게 반응했지만 이는 투자자들의 떼거리 심리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여전히 유가나 주가의 변동성은 크다고 이날 보도했다.

ING의 금융시장 전문가는 "최근의 금융시장 추세가 지속될지는 이라크 전황에 달려 있다"며 "이라크군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세거나 전쟁 피해가 투자자들의 기대보다 커지면 시장은 순식간에 비관론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미 세계 경제가 허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라크전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쁜 변수가 돌출할 경우 경제는 순식간에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빈사상태의 미국 경제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경기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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