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경기 쌀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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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들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해오던 쌀값이 단경기의 고비에서 크게 오름세를 나타냄으로써 농정의 연례적인 시련기를 맞은 듯 하다.
예년에 비하면 비교적 기복이 적었던 올해 쌀값은 작년산 추곡의 풍작등 제법 넉넉했던 물량 덕분이었을 것이다.
지난 3월에 일시적인 쌀값상승이 있었으나 정부곡의 대량방출로 큰 파동없이 넘긴 것은 그만큼 정부보유양곡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단경기릍 앞에두고 다시 쌀값이 크게 뛰고있는 것은 농정당국이 생각하듯이 중간상인들의 가격조작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동안의 정부혼합곡 방출실적이나 일반미의 소비지반입추세로 보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며 적어도 물량으로만 보면 쌀값이 크게 오를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11월부터 7월19일까지 약8개월반동안 방출된 혼합곡만 하더라도 5천5백71만부대를 넘고있어 전년동기보다 4백70만부대가 더 많았다.
또 서울의 일반미반입량도 6월중 평균 5천3백여가마에 달해 지난해 보다 4배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도대체 쌀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는 정부의 논리도 이해됨직하다 하겠다. 게다가 현재의 정부미재고도 아직 5백30만섬이나 남아있다는 발표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쌀의 재고·유통량이 이와 같다면 최근의 쌀값 급등은 분명히 수요측면에서 큰 변화가 생기고 있거나 공급출하 과정에서 일시적인 애로가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요 측면의 변화로서는 아마도 일반미의 수요가 최근 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될 수 있겠다.
쌀소비억제를 주안으로 한 4월의 정부곡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타곡종과의 가격균형이 쌀소비억제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밀가루로부터의 역대체까지도 나타나고 있음은 주목되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정부의 9분도 쌀 판금조치이후 최근 그 단속이 느슨해 짐으로써 정부의 전반적인 쌀소비억제 시책이 후퇴한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농정당국이 특히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점은 정부혼합곡 수요의 변화다. 비록 혼합곡방출량은 지난해보다 4백여만부대가 많았다하나 이에 대한 수요도 더욱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작년이래의 불경기 심화와 격심한 「인플레」로 크게 타격받은 서민가계의 혼합곡 의존도가 높아진 때문이라 하겠다.
반면 정부의 혼합곡방출은 최근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비록 대상지역은 50개에 달하나 그 양은 하루 20만부대에 못미침으로써 그 동안의 수요증가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데도 일단의 원인이 없지않다할 것이다.
공급면의 애로는 이같은 수요측면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허점에서 비롯되고 있으므로 중간상인의 가격조작을 단속하는 일 못지않게 정부혼합곡방출을 늘리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뒤늦게나마 혼합곡 방출량을 무제한으로 늘리고 농협비축미까지도 직매장을 통해 싼값으로 방출하겠다는 것은 최근의 쌀값상승을 제어할 수 있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쌀의 소비억제를 위한 기본 전략은 역시 가격정책에서 구하더라도 곡종간 가격균형이나 서민대책이 항상 중요하다함은 결코 새삼스런 얘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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