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000~9900원 슬쩍 결제 … 혹시 나도 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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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길래 쓸데없는 콘텐트 이용료가 몇 달째 나와요?”

 회사원 박모(33)씨는 최근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휴대전화 통신비가 많이 나온다는 지적이었다. 박씨는 “무슨 소리냐”며 요금청구서를 살폈다. 소액결제 용도로만 1만6500원이 나왔다. 확인해보니 무려 17개월 동안 결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박씨는 이동통신사를 통해 요금을 청구한 콘텐트제공업체(CP)에 연락했다. 이 업체는 박씨가 2년 전 한 파일 공유 사이트에 가입하며 자동결제에 동의했다고 했다. 박씨가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업체는 “가입 약관에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입씨름 끝에 업체는 회사 규정을 들먹이며 사이트 이용 시기를 뺀 8개월치만 환불해줬다. 박씨는 “통신비는 급여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이용료 자체가 소액이라 결제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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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에 사는 대학생 최모(25)씨는 지난 7일 참다 못해 휴대전화 소액결제 피해자 카페에 구제신청을 했다. 소액결제 피해 사실을 통신사에 알렸지만 CP에게 환불 받으라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최씨가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달이다. 우연히 본 문자에서 ‘○○○뱅크/1000원 결제’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실제 통장 계좌를 살펴보니 지난해 3월부터 이번 달까지 매달 1000원이 빠져나갔다.

 휴대전화 소액결제 시장은 2001년 1000억여원에서 지난해 3조68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인증 절차가 까다로운 카드에 비해 쉽게 결제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폐해도 크다. 이용자 몰래 소액요금을 청구하는 휴대전화 소액결제 사기가 끊이지 않아서다. 한국전화결제산업협회가 집계한 휴대전화 소액결제 피해 민원 건수는 2011년 3만6239건에서 지난해 16만9828건으로 폭증했다. 한 포털사이트의 소액결제 피해자 카페는 회원수가 22만 명에 이르고 하루 평균 100여 건의 피해 사례가 올라온다.

 소액결제는 CP-결제대행사-이동통신사를 거쳐 이뤄진다. CP가 콘텐트에 대한 요금 결제를 신청하면 결제대행사를 거쳐 통신사가 요금에 합산한다. 정상 소액결제 과정에선 결제대행사와 통신사가 인증번호를 보내 이용자가 이를 입력하는 본인 확인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매월 일정액이 빠져나가는 ‘자동결제’는 최초 계약 시 이용자를 통한 인증번호 승인 작업을 CP가 한다. 악덕 CP들이 불법으로 확보한 개인정보로 이용자 몰래 허위 승인을 하면 몰래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 소액결제 사기범들은 스미싱이나 해킹, 무료회원 가입 등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나 휴대전화번호 등을 빼낸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은 자신이 운영하는 성인사이트 회원 4만여 명에게 매달 9900원씩 총 4억8000여만원을 빼낸 혐의로 서모(33)씨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서씨는 성인사이트를 인수해 얻은 개인정보로 피해자들을 자신의 사이트 회원으로 몰래 등록시켰다.

 개인들은 한 달에 1000원에서 1만원가량의 피해를 보지만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로 20~30대의 젊은 소액결제 사기범들은 이렇게 돈을 챙겨 고급 외제차를 사고 유흥비로 펑펑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제대행사와 통신사는 소액결제사기를 막기 위한 노력을 안 하고 있다. 결제금액의 7%를 수수료로 받는 결제대행사는 CP의 매출이 이익에 직결된다. 한 결제대행사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이 매출을 의식해 CP의 불법을 알고도 눈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건당 2~3%의 수수료를 받는 이동통신사도 피해가 발생하면 실제 요금을 청구한 CP에 연락해 해결하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자동결제 시 인증 작업을 CP가 아닌 결제대행사나 통신사가 해야 한다”며 “대기업인 통신3사가 결제 내용을 문자로 직접 통보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승호·유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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