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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팝 중년팬 '팝저씨' 그들을 응원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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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크레용팝의 아저씨 팬들을 일컫는 ‘팝저씨’들. 삼성미술관 플라토에 내놓은 정연두씨의 작품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무대다. 50여 명의 ‘떼창’이 울려퍼지는 영상이다. [사진 이정철]
정연두

이번엔 ‘팝저씨’들이다. 정연두(45)의 신작 ‘크레용팝 스페셜’ 얘기다. 주인공은 걸그룹 ‘크레용팝’이 아니라 이들을 먼발치서 응원하는 중년팬 팝저씨다.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옛 로댕갤러리)서 13일부터 여는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의 하이라이트다. 유리성을 닮은 이 미술관의 마지막 방에서 울리는 기합소리 가까운 ‘떼창’이 그 정체다.

 팝저씨 50여 명의 일사불란한 추임새를 찍은 영상, 크레용팝이든 팝저씨든 언제든 오시라고 번쩍이는 빈 무대, 트레이닝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설치와 팝저씨들이 헌정한 이름표와 뱃지들-. 점잖은 전시장에 팬덤의 열기가 뜨겁다. 부성애와 전우애로 똘똘 뭉친 듯한 이 독특한 중년팬들은, 우리네 평범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

 “30, 40대면 사회에서 조직의 쓴맛이랄까, 사회의 체계 속에서 성공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다는 걸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여동생 같은 다섯 가수를 적극 후원하면서 이들의 성공에서 대리만족하는 마음이죠”라는 작가의 설명은 결국 자기 얘기다. 또한 개인화돼어가지만 여전히 집단 속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군대 문화를 경험하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역경을 겪은 제 또래 사람들이 이제 중년이 되어 스스로의 힐링을 찾는 과정이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히 단합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개인의 경험이 결국 사회의 한 양상을 반영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정연두는 오랫동안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하는 예술가로 살았다. 예술로 평범한 이들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순진한 야심을 가진 이였다. 시작은 중국집 배달부였다. 신도시의 이 소년 가장은 오토바이만 타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무당당했다. 맨발에 슬리퍼 신은 소년이 폼나게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영웅’(1998)이라는 사진으로 남았다. 예술가라는 애매모호한 직업을 가진 스물아홉 살 남자가 자화상처럼 만든 첫 작품이었다.

 정씨는 “일개 예술가로서 남의 꿈을 이뤄준다는 게 불가능함을 안다”며 "그러나 예술가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내게 선뜻 현관문을 열어줬고, 자기의 꿈을 말해줬다. 바로 그 이야기를 작품으로 담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전시된 또 다른 신작엔 본인의 꿈도 담았다. “대학 시절 개관한 로댕갤러리에서 ‘지옥의 문’을 보며 예술가가 되길 꿈꿨다”는 그가 만든 21세기판 지옥의 문은 ‘베르길리우스의 통로’다. 3D 영상기기를 착용하고 지옥의 문을 보면 거기 246개 인물 조각이 살아있는 듯 도드라져 나온다. 실제 누드모델들이 재현한 장면을 담은 가상의 디지털 조각이다. 계기는 작가가 만난 맹인 안마사. 보지 못하지만 사진 찍기가 취미인 그를 통해 작가는 보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게 됐다.

 6월 8일까지 열리는 전시엔 반환점을 도는 이 중진 미술가의 첫 작품부터 신작 두 점까지 50여 점이 출품됐다. ‘식스 포인트’(2010), ‘도쿄 브랜드 시티’(2002), ‘상록타워’(2001) 등 그간 국내외에서 보여준 인기 시리즈도 있다. 정씨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올해의 작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2012년 미국 ‘아트앤옥션(Art+Auction)’지의 ‘가장 소장가치 있는 50인의 작가’ 등에 꼽혔다.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1577-7595.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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