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흰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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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 전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찾아왔다.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 거친 손, 「시골처녀」란 말이 어울릴만한 모습이다.
우린 서로 손을 잡고 둘이의 검은 손과 그을린 얼굴을 보면서 한껏 웃었다.
아직까진 모내기도 며칠 더 있어야겠고 시간여유가 있어서 우리들은 그리 멀지 않은 대구 달성공원을 구경할 겸 야외로 행하는 버스를 탔다.
공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그동안 쌓였던 숱한 생각과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맑은 공기를 맘껏 호흡했다.
그런데 우리가 앉은 옆좌석에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서 우리를 보고 빈정거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이구, 저 손 좀 봐, 처녀가 저게 뭐야.』
『글쎄, 손이 저래 가지고야 어떻게 시집을 갈까.』
그럴까.
정말 그럴까.
하긴 그네들의 다듬어진 하얀 손에 비하면 우리들의 손은 너무나 검게 그을렀다.
그러나 이 검은 손들의 보탬이 없다면 하얀 그녀들의 손은 있을 수 있을까.
도회지생활로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손이 반드시 자랑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울적한 심사로 공원을 나섰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친구와 나는 상한 기분을 풀어버리려고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누가 뭐라고 했던지 내 손을 꼭 쥐며 감싸주는 친구의 검은 손이 한층 더 정겹게만 느껴졌다.
차창으로 비치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나도 빨리 집으로 가 바쁜 농사일에 보탬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친구의 손을 꼭 잡아본다.
서영숙<경남 의령군 정곡면 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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