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함 50일 붉은 사이공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4월30일 사이공 함락으로 공산화된 월남은 군정이 계속되고있으나 치안이 확보되지 않고 경제는 파탄, 국민생활은 말이 아니다. 정글 속에 숨어있던 이른바 「임시혁명정부」(PRG)가 사이공에 들어서긴 했지만 지역별로 구성된 군사관리위원회가 아직도 통치권을 장악하고있어 PRG는 「유령정부」라고 불리고있다.
다음은 그동안 서방기자들이 단편적으로 보도한 적 치하 사이공의 표정을 종합한 것. <편집자주>
○…지금 공산월남의 제일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이다. 사이공 대학생들은 『미국 퇴폐문화의 잔재를 청산하라』고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벌였으며 플레이보이지 등 미국판 잡지나 음반테이프 사진책 및 이들의 번역판들이 거리에서 불태워졌다.
청바지와 매니큐어, 루지, 미니·스커트 등 서구풍은 자본주의 잔재라고 공격받았다.
장발은 단속되고 여자들은 양장대신 아오자이를 입도록 권고받고 있다.
값비싼 술과 호화로운 쇼로 월남의 부유층과 외국인들을 끌어들여 불야성을 이루던 사이공 최대의 나이트·클럽 「맥심」엔 지금 치안본부라는 간판이 붙어 무장병이 경계를 서고있다.
그밖의 클럽이나 호텔건물도 대부분 진주군의 본부나 숙소로 쓰이고 있다. 사이공에 지금 경찰관은 한 사람도 없고 치안은 군인들이 맡고 있다. 당국은 도주한 구정권의 경찰관들에겐 아직 복귀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구정권 때 세워진 사이공시내의 동상들은 대부분이 파괴됐다.
24개나 되던 월남어 신문이 모두 없어지고 「해방일보」라는 월남공산정권의 기관지가 하나 발간될 뿐이다. 방송도 사이공방송국을 「해방방송」으로 개칭한 국영방송이 하나 있을 뿐이다.
○…두옹·반·민, 후옹 등 전대통령들은 제외되었지만 구정권의 고급관리·군장교 대부분은 재교육영장을 받아 강습소에 투입되고있으며 학생들은 「월남혁명」과 공산주의에 관한 교리교육을 받고있다. 군가와 공산주의 슬로건이 거리의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고 빌딩에는 혁명을 고취 찬양하는 새로운 현수막과 호지명 초상화가 걸려있다.
○…지금 공산월남이 당면한 가장 큰 사회문제는 식량과 범죄문제다.
하노이방송은 인구의 절반이상이 실업상태라고 보도했지만 서방측 소식통들은 80%이상일 것이라고 보고있다.
사이공·지아딘 지구 군사관리위는 「기아해방운동」을 내걸고 쌀을 못사는 극빈자에게 주 3㎏씩 무상배급을 실시하고 있으나 에어컨이나 텔리비젼·냉장고등 고급전기제품을 가지고 있는 집엔 그나마도 주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부유층 시민들은 쌀을 얻기위해 가재도구를 들고 나가 팔기 시작했고 거리의 요소요소엔 중고가구품만을 취급하는 신종점포가 등장했다.
주택가인 쭈민장 거리엔 6월 들어 매일 약 2km에 달하는 노천시장이 서기 시작했다. 양복장·응접세트·라디오·텔리비젼에서 의류·변소용품에 이르기까지 중고품들이 헐값에 내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값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거래는 점점 한산해지고 있다. 많은 주택의 바깥벽이나 대문엔 『집 팝니다』라는 쪽지가 불어있고 시골로 가는 시민이 점점 늘고있다. 새 정부가 귀향자들에게 토지를 분할해주겠다고 선전한 탓도 있지만 대부분은 식량난 때문인 것이 확실하다.
자전거는 가장 잘 팔리는 상품중의 하나다. 교통이 정상화되지 않은데다 개설린 부족으로 모터·사이클을 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1백30달러(6만5천원)에 거래되고있다.
한 갑에 3백50피아스타 하던 「프레지던트」월남담배가 요즘엔 1천피아스타나 된다.
반면 양주값은 3분1로 떨어져 별 셋짜리 「마르텔·코냑」1병이 2천5백피아스타. 담배 두갑 반이면 맞바꿀 수 있다. 킨토시에서 일하고있는 한 여공은 구정권 때 한달에 8만피아스타를 받았으나 지금은 쌀 21㎏과 1천피아스타를 받는다고 했다.
봉급이 적다고 일을 안 하면 『자본주의자』 또는 『반동분자』라고 공격받는다고 결혼하려는 사람은 관청에서 결혼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리들은 식을 소규모로 치를 것을 서약하지 않는 한 허가를 제때에 해주지 않는다.
○…공산화이후 경비병들은 도둑을 보는 대로 발포하고 잡히면 거리에서 총살에 처하고있으나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총살된 절도나 강도의 시체엔 피살이유가 적힌 피키트가 놓여 오가는 시민들이 읽을 수 있게 했다. 지난달 27일 사이공거리에서 총살된 절도범은 여학생시계 하나를 훔친 혐의였다.
군관위는 처형된 범인들을 구 월남군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