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모든 남자는 평등하게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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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 있다. 연장자인 남자가 식당 한 자리에 앉으면 거기에서 먼 좌석부터 사람들이 채워진다. 나중에는 그의 양옆, 앞자리, 앞의 대각선 자리만이 비어서 권력자인 그 사람은 섬처럼 남겨진다. 간혹 그 자리에 자발적으로 앉는 남자는 권력자의 오른팔이거나 권력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뿐이다. 다른 남자들은 연장자가 고립감을 느끼기 전에 서둘러 여자를 불러 그 자리에 앉도록 권유한다. 여자가 사양해도 의무감에 사로잡힌 듯 간곡하게 청한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볼 때 불쾌감이 없지 않았다. 여자를 기쁨조 취급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음에는 남자들이 여자를 완충장치로 사용하는구나 싶었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 솟구치는 본능적 경쟁심, 윗사람과 있을 때 느끼는 억압적 불편함을 피해 보고자 여자를 필요로 하는 듯했다.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남자들은 여자를 의식하면서 신사적인 평화 상태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행동하는 남자들 내면의 불안감이 보였다. 남자들이 연장자나 권위자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여자 입장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어떤 직장인은 상사에게 조퇴 신청을 망설이다가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일 것이다.

 인류의 처음부터 남자는 남자의 경쟁자였다. 사회 생활은 승패와 위계로 짜여 있고 초등학교 교실부터 모든 집단에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힘의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내세울 게 나이밖에 없는 남자들은 즐겨 ‘민증 까기’를 한다. 마음 깊은 곳에는 성장기에 아버지에 대해 느낀 분노와 박해감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 세대가 부모 역할을 잘못한 까닭도 있고, 당사자가 내면의 분노를 통합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상황에서 남자는 항상 불안감으로 긴장해 있다. 특히 유년기에 경험하는 거세 불안은 남자의 정서 밑바닥에 거대한 두려움을 펼쳐 놓는다. 페니스를 가지고 있는 한, 모든 남자는 평등하게 불안할 것이다.

 권력욕은 불안감에 비례한다.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은, 힘을 갖기만 하면 상황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면서 안전함을 맛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실제로 힘을 이용해 그런 것들을 향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와 재산을 갖는다 해도 내면의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을 피해 잠시 향락 쪽으로 도망칠 수 있을 뿐이다. 실은 다른 남자들을 두렵게 하는 그 권력자가 가장 불안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