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vs 일본, 서로 범죄 국가라며 손가락질…'진풍경'

중앙일보

입력

‘지금 누가 누구보고 반인도범죄자라는 거야.’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회의에서 일본과 북한이 서로 범죄 국가라고 손가락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왜곡을 두고서다.

발단은 이시하라 히로타카 외무성 부상의 기조연설이었다. 이시하라 부상은 최근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언급하며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인도범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인 납북 문제를 거론하며 “이는 일본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시하라 부상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새로운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또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 문제를 회부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장내에 있던 북한 대표가 반론권을 신청했다. 바로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의 김영호 참사관이었다. 그는 COI를 ‘서구 국가들의 마리오네트’라고 비하하며 이시하라 부상의 연설에 반박했다. 또 "이런 주장들은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적대적인 세력들로부터 칭찬도, 코멘트도 바라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김 참사관은 이내 일본을 정조준했다. 한반도 침략행위를 두고서다. “한반도를 점령한 35년동안 일본은 수많은 반인도범죄를 자행했다. 840만명을 납치, 징병, 징용하고 10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또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게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에 일본 대표가 반박에 나섰다. 과거사에 대한 북한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아시아 등 다른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는 역사적 사실에 직면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와 후회를 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왔고, 법치에 근거한 평화 사회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김 참사관이 다시 나섰다. 반론권은 두번까지 행사할 수 있는데, 그는 마지막 반론권 2분을 온전히 일본의 역사 왜곡을 공격하는 데 썼다. “방금 일본 대표의 발언과 반대로 일본 정부는 과거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고위급 정치인이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전쟁과 전범들에 대해 어떤 기준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쟁중 저지른 강간이 전쟁범죄도, 반인도범죄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진짜 얼굴이다. 과거 저지른 범죄를 인정도 하지 않고 법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의 속셈이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법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 다시는 반인도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려면 반인도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우고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그냥 있을 일본이 아니었다. 다시 반론권을 얻은 일본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는 전범 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다른 순국선열들도 잠들어 있는 곳이다. 총리가 신사 참배에 대해 발표한 성명에도 이는 다시는 전쟁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지 전범을 추모하거나 군국주의를 추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돼 있다. 일본 국민의 정체성에 인권과 평화는 매우 중요한 본질이다. 이런 핵심적 가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변한 적이 없으며, 일본 정부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북한 내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 건설적 방법으로 이에 응답하길 바란다”며 다시 북한 인권 문제를 꺼내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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