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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한 김용환 구상-인사선풍 몰고 온 시은주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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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틀동안, 거의 숨돌릴 새도 없이 강행된 5개 시은주총은 한마디로 말해서 금융면에서의 「김용환 구상」이 태어나는 산실이었다. 이번에 임기가 만료된 시은임원은 은행장 2명을 포함해서 모두 22명. 72년 남덕우 재무시절의 금융정상화파동 때 대거 선임되었던 사람들이 일시에 물러나게 됨으로써 김 재무는 힘 안들이고 「찬스」를 잡은 셈이었다.
대주주인 정부가 이번 주총에서 노린 목표는 은행규모의 대형화 및 업무의 국제화. 총2백6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결의하고 외환「사이드」에서 새 임원을 많이 뽑아 올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정부는 또한 인사원칙으로서 ▲3기연임을 사실상 금지하고 ▲임기중이라도 경영능력에 흠이 발견되면 가차없이 자르겠다고 공언, 이번 주총에서도 이것이 단순한 엄포가 아님을 입증했다.
하지만 금융계일부에서는 정부가 이같은 인사원칙을 강행할 경우 「금융의 자주성」이 더욱 희미해져서 긴 눈으로 보면 소탐대실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염려했다.
이번 인사의 또 한가지 특징은 평이사 제도의 신실과 한은 인사의 전출.
새로 뽑힌 15명의 평이사는 거의가 지점장·부장들이어서 자칫 정체에 빠지기 쉬운 은행가에 새바람을 붙어 넣어줬다.
한편 한은 「맨」의 시은 전출은 「장래의 한은 이사감」에게 시야를 넓혀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후문인데, 조은으로간 이헌승 외환관리부장의 경우, 지난해의 외환위기 요리솜씨로 이미 사정권에 넣었던 한은 이사직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 되었다. 어쨌든 이로서 은행장·전무 각 1명과 상무 12명이 물러났고 그 대신 8명의 상무와 15명의 평이사가 탄생했다.
이동규모로 따지면 72년의 금융정상화파동을 오히려 능가하는 일대 선풍이었다.
문제는 이번 인사조치를 금융정상화내지 금융풍토의 쇄신작업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정부측 입장에 있다.
예컨대 행장과 상무 2명이 물러난 제일은의 경우 당기순익·연체율 등 각종 경영지표를 보면 결코 다른 은행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제일은의 당기순익과 대손충당금 합계는 35억8천만 원으로 상은보다는 3억원 가량 떨어지나 조흥은에 비하면 13억원이나 많은 것이다.
또 연체율도 2·59%로 서울은 5·39%, 조흥은 4·55%, 상업은 3·0%와 견줄 때 월등 견실한 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조치가 경영능력·실속위주의 금융풍토쇄신작업이라고 보도됨으로써 임기 중에 물러난 민영훈 행장이나 19명의 임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뜻밖의 피해를 보게된 것이다.
5개 시은의 당기순익은 총 99억1천6백만원으로 전기에 비해 58%나 늘어났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못한 점은 많다.
무엇보다도 이익이 은행본연의 업무인 예대간의 돈장사에서 나오지 않고 주로 정책금융의 이차 따먹기라든가 외환매매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각 은행의 외환매매이익금은 ▲조은 12억원 ▲상업 13억5천만원 ▲제일 9억원 ▲한일 12억8천만원 ▲서울은 9억2천만원 등 도합 56억5천만원으로 상기순익의 57%가 넘는다. 또 5개 시은이 6개월 동안 대불 해준 돈이 1백17억3천7백만원에 이른다는 것도 반드시 검토되어야할 문제점이다. 만약 이와같은 대불을 일으킨 부실대출이 금융외적인 작용으로 일어났다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앞으로 은행감독원과 금융통화운영위도 수술. 풍토쇄신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줄 예정이다.
어쨌든 이로써 「김용환 구상」의 윤곽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현기증을 느낄 만큼 격심한 지각변동 끝에 전혀 형태가 다른 산맥이 태어난 것이다.
앞으로 정부나 금융가가 다같이 떠맡은 금융정상화작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홍사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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