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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홍명보 손 잡나 놓치나 … 운명의 6일 새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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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카메라 앞에서는 잘 웃지 않는 박주영. 동료 틈에 있을 땐 이런 표정이 나온다. 그가 대표팀에 돌아왔다. 4일 아테네에서 열린 팀 훈련에 참가했다. 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은 그의 브라질 월드컵 출전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경기다. [사진 아테네=대한축구협회]

묘한 데자뷰(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다. 박주영(29·왓퍼드)과 홍명보(45)의 특별한 동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이 연상된다.

 3일(현지시간) 오후 그리스 아테네의 파니오니오스 스타디움.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박주영이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지난해 7월 홍명보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박주영의 대표팀 첫 발탁, 첫 훈련이다. 월드컵 무대를 두 번이나 밟은 박주영이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구자철(25·마인츠)의 득남 소식이 전해져 대표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지만 박주영은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한 시간여 훈련 뒤 박주영이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다리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박주영이 취재진 앞에 서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박주영은 20대 초반부터 언론 인터뷰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홍 감독도 노심초사했다.

 오랜만에 대표팀에 소집된 데다 잉글랜드 2부리그 왓퍼드로 이적한 뒤에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박주영이 심리적으로 흔들릴까봐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대표팀과 동행한 황보관 기술위원장까지 나서 박주영을 설득했다.

 홍 감독은 박주영의 적응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호흡을 맞췄던 지동원(23·아우크스부르크), FC 서울과 대표팀에서 줄곧 함께 해온 이청용(26·볼턴)을 박주영의 파트너로 배치했다. 호흡이 잘 맞는 선수들과 손발을 맞춰 빨리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도록 한 것이다.

 박주영은 훈련 중 열린 미니게임에서 스루패스로 이청용의 골을 돕는 등 연계 플레이에 치중했다. 박주영은 “오랜만에 대표팀에 왔지만 낯익은 선수가 많아 어색하지 않았다. 옆에서 말을 걸어주고 도와주려 해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2년 전 런던 올림픽 때도 홍 감독은 박주영을 가까스로 대표팀에 불렀다. 병역 면제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박주영을 데리고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 홍 감독은 “선수가 필드 안팎에서 어려워할 때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팀을 위한 자리라는 판단에 염치 불고하고 같이 나왔다”고 말했다. “주영이가 군대 안 간다고 하면 내가 가겠다”는 농담까지 했다. 박주영 입장에서는 반드시 털고 가야 할 문제였는데 홍 감독이 나서서 해결해줬다. 박주영은 일본과의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어 홍 감독에게 보답했다.

 사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홍 감독은 박주영을 어렵게 발탁했다. 당시 박주영은 AS모나코(프랑스)에서 맹활약하고 있었고, 구단 측이 박주영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홍 감독은 AS모나코 단장을 찾아가 설득해 박주영을 데려왔다. 그리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년 주기로 홍 감독과 박주영의 동행이 계속되는 셈이다.

 이번에도 박주영을 불러오기까지 난관이 많았다. 홍 감독은 부임 후 ‘소속 팀에서 꾸준히 활약해야 대표팀에 올 수 있다’는 원칙을 굳게 지켜왔다. 아스널에서 교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박주영을 데려올 명분은 없었다. 홍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주영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팀을 옮겨 경기를 뛰어야 대표팀에 부를 수 있다”며 이적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박주영은 지난 1월 이적시장 마감일에 왓퍼드로 이적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했다. 더 이상 늦으면 박주영을 시험할 기회가 없겠다고 판단한 홍 감독은 결국 자신의 대원칙까지 깨면서 그를 발탁했다.

 박주영은 6일 오전 2시(한국시간) 그리스와 평가전에서 원톱으로 선발 출전할 전망이다. 손흥민(22·레버쿠젠)과 이청용이 변함없이 좌우 날개를 맡고, 이근호(29·상주)와 구자철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포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는 주전 멤버가 자리 잡아 완성도를 높이는 일만 남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인 그리스는 공격이 매섭고 신체조건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러시아(1차전)와 벨기에(3차전)를 만나는 한국 대표팀엔 좋은 스파링 상대다.

아테네(그리스)=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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