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영화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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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3일 3명의 문공부 영화과 직원과 1명의 영화업자가 뇌물 수수 및 뇌물공여 혐의로 경찰에 의해 구속된 사건은 해묵은 영화계의 부조리를 제거하기 위한 영화 당국의 끈질긴 집념이 결국 도로였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표면적으로 부각된 것은 검열과 상영 기간에 대한 일부 영화 담당 공무원들의 독선적 처리, 그에 따른 영화업자들의 뇌물 공세이지만 그 이면에 외국영화 수입에 따른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게재돼 있다는 것이 영화가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이야기다.
영화법이 개정되거나 영화 시책이 바뀔 때마다 영화업자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외국 영화 수입에 대한 당국의 방침이다. 국산 영화를 만들어 실패를 되풀이해도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만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화를 한편이라도 더 수입하기 위한 영화업자들의 경쟁은 치열한 것이었다.
문공부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분기마다 5편까지의 우수 영화를 선정, 외화 「코터」 1편씩 배정토록 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우수 영화의 개념에 모호한 우리 나라의 영화 풍토에서 영화업자들의 경쟁만 더욱 치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지난달 26일 문공부에 의해 발표된 75년도 1·4분기 우수 영화 5편 속에 빠졌던 모 영화업자의 제보에 의한 것이라는 풍문은 그러한 이유로 해서 꽤 타당한 근거를 가지는 것이다.
우수 영화 심사가 작년까지는 문공부의 국장급 이상 고급 관리들에 의해 시행됐으나 영화계의 반발이 거세자 금년부터는 사회 저명 인사 10명으로 새로운 심사 위원단을 구성, 심사에 임하도록 했다. 그러나 문공부 당국의 철저한 보안 조처에도 불구하고 심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심사위원 명단은 영화계에 공공연히 나돌았고 심지어 몇몇 영화업자들은 모모 업자들이 심사위원과의 친분을 이용, 막대한 금품을 뿌리고 있다고 불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우수 영화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물론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 대해서 조그만큼의 전문적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수 영화를 가려낼 수 있느냐는 것이 영화업자들의 계속된 불만이었으며 이번에 심사위원 위촉을 받은 10명만해도 2, 3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영화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우수 영화와 흥행 실적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우수 영화로 선정된 상당수의 영화가 흥행에서 여지없이 참패했거나 해외 영화제에 출품돼 「수준 이하」의 딱지가 붙어 되돌아온 사례를 보면 이들의 주장이 전혀 억지소리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사건에서 우수 영화 선정에 따른 잡음의 근원은 파헤쳐지지 않은 채 검열·상영 기간에 따른 영화업자와 공무원간의 증수뢰가 법의 철추를 받게 됐는데 이 문제만 해도 영화법의 모호한 점을 영화업자와 공무원이 함께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령 검열의 경우 73년 2월 개정된 새 영화법 시행령 l8조는 검열 기준의 세부 사항으로 11개 조항을 마련해 놓고 있으나 그중 몇 개항은 그 한계가 모호, 실무자의 즉흥적인 판단에 따라 삭제될 수도 있고 삭제되지 않을 수도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검열에서 적국이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성문제에 대해서도 성범죄 행위 등을 정당화하는 것』으로만 규제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미신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권장하는 것』 『범죄 수단을 지나치게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 『존비속의 학대를 정당화하는 것』따위를 삭제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극히 모호하다.
이밖에 복사만 영화 상영 허가, 미성년자 관람 허가, 상영 기간 연장 허가 등 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도 실무자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도 되는 등 영화계 내부의 부조리에 못지 않은 부조리가 관의 내부에서도 자행돼 왔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어느 영화인의 표현대로 이번 사건은 영화계 부조리의 한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화업자를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이 건전한 영화 풍토를 조성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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