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m 굴러 쏙 마술 같은 이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지난해 12월 약혼한 올린 폴라 크리머(왼쪽)와 비행기 조종사 데릭 히스. [사진 폴라 크리머 페이스북]

23m짜리 그림 같은 퍼팅 이글. ‘ㄴ’자로 급격하게 꺾이는 내리막 퍼팅이 그린 경사의 변곡점을 지나자 홀을 향해 치달았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공은 컵으로 덜커덩 떨어졌다. 18번 홀(파5·498야드)에 운집한 갤러리의 탄성이 터졌다. 공을 쳐다보던 ‘핑크 공주’ 폴라 크리머(28·미국)는 그린 밖으로 펄쩍펄쩍 뛰쳐 나가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환호했다.

 사랑의 힘인가. 지난해 자신의 반쪽을 찾은 크리머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크리머는 지난해 12월 비행기 조종사 데릭 히스(34·미국)와 약혼했다. 두 사람은 공군 조종사 출신인 양쪽 부친의 인연으로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 시즌을 끝내고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2일(한국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에서 열린 최종 4라운드. 크리머는 11언더파의 웹에게 4타나 뒤진 7언더파로 경기를 시작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전날 “도전적인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던 크리머는 끝까지 경기에 집중했다. 그의 모자챙에는 약혼자 히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코팅한 볼마커가 꽂혀 있었다. 크리머는 이날 3타(버디 4, 보기 1개)를 줄여 최종 합계 10언더파로 아자하리 무뇨스(27·스페인)와 연장전을 벌였다.연장 첫 홀에서 무뇨스와 파 세이브로 비긴 크리머는 두 번째 연장전에서 2온에 성공한 뒤 거짓말 같은 이글 퍼트로 드라마를 완성했다. 2010년 US여자 오픈 이후 3년8개월 만에 맛본 승리이자 통산 10승의 순간이었다. 우승상금 21만달러(약 2억2500만원).

  웹은 합계 9언더파 단독 3위에 만족했다. 박인비(26·KB금융그룹)와 유소연(24·하나금융그룹)은 합계 7언더파로 공동 4위에 올랐다.

최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