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잣대…의료質 낮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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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피부염을 앓는 崔모(35.여.서울시)씨는 지난해 3월 동네에 있는 C피부과 의원에서 덱사메다손이라는 주사를 맞을 때 건강보험 적용을 받았다.

하지만 두달 후 인근 L의원에서 같은 진료를 받았는데도 보험이 안돼 비용을 다 부담했다. 같은 처방이지만 의원에 따라 건강보험이 다르게 적용된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L의원은 (청구한) 건당 평균 진료비가 전국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정밀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덱사메다손과 같은 성분의 알약을 썼다는 이유로 3월분 진료비가 깎이다 보니 4월부터 주사약값을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반면 C의원은 이런 조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처방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의사의 과잉진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잣대(진료비 심사기준) 가 모호하거나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환자 부담이 늘거나 의료기관이 이를 우려해 정작 필요한 진료를 기피하는 등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화여대 이선희(예방의학) 교수는 건보 재정 절감에만 매달려 진료 행위를 제한하면 병을 되레 키워 결국에는 돈이 더 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22일 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건강보험 심사제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모호한 진료제한=교통사고로 허리나 목에 이상이 생긴 급성 환자에 대해 운동 치료 요법을 사용하면 건강보험이 안된다. 급성 환자는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 주치료이기 때문에 운동요법은 적정 진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 재활치료의 일종인 초음파.심층열 치료 시간이 10분이 안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재활의학과 전문의 李모씨는 "급성 환자라 하더라도 천천히 움직이는 운동요법을 써야 하고 초음파 치료도 환자에 따라 굳이 10분 이상 안해도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나=2001년 초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난 뒤 의료기관의 부당.과잉 진료에 대한 당국의 감독이 부쩍 강화되면서 비롯됐다.

지난해 의료기관이 청구한 진료비 중 심평원이 삭감한 건수는 전체의 14.2%로 2001년보다 20.1% 늘었다. 심평원은 대부분 정당하게 걸러낸 부당.과잉 청구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이 중에는 모호한 규정이나 자의적 해석에 걸린 것도 꽤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보험심사간호사회 김세화 회장(서울아산병원 의료정책팀장)은 "보험처리가 되던 약이나 의료행위가 안되는 쪽으로 지침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유예기간을 두지도 않고 시행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분야별 전문 의사들의 의견을 듣고 심사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의료계의 문제 제기는 일반화하기 곤란한 지엽적인 것들이 많다"면서 "문제가 되는 기준은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해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바로잡습니다>

3월 23일자 8면 '고무줄 잣대…의료 질 낮춘다' 기사에서 '건보 재정 절감에만…돈이 더 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 李교수를 이화여대 의대 이선희(예방의학)교수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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