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 이겨낸 「시한부 인생」-퐁피두 사망 1년…그 사인·투병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2일은 고 「조르지·퐁피두」 전 「프랑스」대통령의 1주기. 이날을 맞아 그가 사망한 정확한 병명과 최후의 나날들이 이곳에서 보도되고 있다. 단편적으로 나온 이 보도들을 종합하면 그의 병명은 이미 보도된 바 있는 「칼러」씨병이 아닌 「발덴스트롬」병이라는 것이며 「퐁피두」 자신은 이미 죽기 3년전인 71년 초에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유언까지 작성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후계자를 결정하고자했으나 의사들이 정확한 사망일자를 진단하지 못해 후계자지명 이전에 이 세상을 하직한 결과가 되었다. 특히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를 현재의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을 제안했던 것은 그가 그의 임기를 끝마치지 못할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중임을 하기 위한 술책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육체적으로 갈기갈기 찢긴 인간이었으나 죽음 직전까지 정신적으로는 명석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불굴의 인간이었다』고 전 각료가 말했듯이 그는 시한부 인생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4년간을 대통령으로서 조금도 비뚤어짐 없이 이성적으로 중책을 수행한 경이적 존재였다.
그는 67년 봄, 그러니까 죽기 만 7년전에 이 무서운 병에 걸렸다.
이듬해 68년 그 유명한 5월 학생혁명 때 그는 수상으로서 좌파지도자 및 학생지도자들과 25시간 「마라톤」협상을 하는 등 2차전후 직면했던 최대의 난국을 타개하고 69년 총선에서「드골」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었다.
이때 그는 지독하게 피로한 기색을 보였으나 모두들 5월 혁명의 뒷수습과 대통령선거전에서 연유된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
71년 초 그의 병은 「발덴스트롬」병으로 확인되었으며 「퐁피두」에게도 이 사실이 통보되었다. 이 병은 l944년에야 최초로 발견된 병으로 혈액에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 이것이 골수를 공격함으로써 인간을 극단적인 피로상태로 몰아가고 임파선에 종창이 생겨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것.
이때 그는 의사로부터 그의 수명은 향후 3∼7년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해 8월 『나를 「오르빌리에」에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언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생명의 시한부 3∼7년을 고려,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면 임기만료 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판단, 이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전 의석수의 5분의 3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73년 초 의회에 이 개정안이 나왔을 때 세상은 그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2차 중임하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으며 좌파와 그 자신이 「보스」인 「드골」파의 반대와 기권에 부닥쳐 패배하고 말았다. 『「엘리제」궁에 후계자를 심어놓고 세상을 뜬다』는 그의 열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만일 이 안이 통과되었더라면 그는 임기를 소원대로 끝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드골」파의 「샤방-델마스」(그 자신이 탈세 혐의로 파면시켰지만 인기는 여전했다)와 독립공화파의 당수이며 재무상인 현 대통령 「지스카르-데스텡」 사이에 그 누구도 후계 지명을 하기 힘들었으며 결국 죽을 때까지 지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74년 초에 들어서면서 그의 명은 악화일로를 걸어 쉬는 일이 잦자 유력지 「르·몽드」가 최초로 이에 대해 불안을 표시, 후계자 지명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퐁피두」는 죽기 20일 전인 74년3월l2일에는 흑해 연안까지 날아가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서기장과 회담하는 등 그 자신의 병 악화를 「캄플라지」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1974년3월27일 수요일 최후의 각료회의가 열렸다. 그는 각료들에게 인사를 나누었으나 습관대로 각료들의 의자 주변을 돌지는 않았다. 아니 돌 수가 없었다. 각료들 중 몇몇은 그의 상의에 탈지면 흔적을 보고 놀랐으나 아무도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대통령은 이때 코피를 흘리면서 각료회의를 주재했던 것이다. 그는 이어 「에너지」문제를 둘러싼「프랑스」의 독자적 외교노선에 관해 오랫동안 지시를 한후 4월4일부터 2주일간 휴식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4월4일에는 영원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파리=주섭일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