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혐한시위 … 한국인 인종 모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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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지난해 9월 8일 도쿄 한인타운에서 일본 우익단체가 혐한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일본에는 아직도 ‘일본인 전용’이라는 간판이 민간 호텔과 식당 등에 내걸리고 있으며 재일 한국인과 중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발표한 ‘2013년 국가별 인권보고서’ 중 일본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국무부는 일본 극우단체들의 혐한(嫌韓·한국인들을 혐오한다는 의미) 시위를 적시해 비판했다. 미 정부가 인권보고서에서 일본의 혐한 시위 등을 문제 삼은 건 처음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 간 일고 있는 외교 갈등과 맞물려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국무부는 “2013년 한 해 동안 극우단체 회원들이 도쿄에 있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연쇄 시위를 벌였다”며 “극우단체 회원들은 인종을 모욕하는 언어를 쓰고 증오에 가득 찬 연설을 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17일 ‘자이니치(在日·일본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 도쿄에서 혐한 시위를 벌인 사례를 소개한 뒤 “이로 인해 이 단체의 대표와 시위 관련자 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소개했다. 국무부 보고서는 “일본 정부 관리들은 공식적으로는 재일 한국인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일본 내에서 인종과 국적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곳곳에서 국무부는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 등이 일본에 영구적으로 살면서도 시민으로서 권리와 정치적 권리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 예로 “법률적으로 차별이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중국·한국·브라질·필리핀계 영주권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견고한 사회적 차별에 직면해 있다”며 “그중에는 거주와 교육·의료·고용 기회에 대한 제약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재일 한국인의 경우 2012년 5581명이 일본에 귀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가 귀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일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귀화 신청과 관련해 관료적 허점이 있고 승인 절차도 불투명하다는 불만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과 관련해서도 “고용주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내국인과 다른 고용계약서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혐한 시위는 갈수록 늘고 격해지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3년 사이 혐한 시위 수가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과거 “다케시마(독도) 반환” 등의 구호가 “한국인은 해충이니 살충제로 없애자” 등 민족 차별로 격화되고 있다.

 국무부는 이날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선 2012년에 이어 “여전히 개탄스럽다”고 표현한 뒤 “탈북자들은 사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형과 임의 감금 등을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 국무부는 인권보고서 한국 편의 ‘언론자유’ 항목에서 “지난해 11월 한국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간 방송인 JTBC의 뉴스 프로그램이 정부를 비판하는 패널들만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집권당에 의해 지명된 위원들이 공정성과 보도 준칙을 위반했다며 이 같은 제재를 주도했다”고 적시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도 보고서에 실렸다.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채 전 총장에게 사임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위해 혼외자 관련 자료들을 보수 언론에 고의로 유출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국무부는 2012년 한국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댓글사건이 있었다고 밝힌 뒤 “하지만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사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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