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정책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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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려워진 외환 사정의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 보수적으로 운영해 온 외환 정책 기조를 크게 바꿀 것이라 한다.
재무부가 구상하고 있는 외환 정책 방향은 경상 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입 규제의 견지, 외화 유입의 증대를 위한 외환 장벽 완화, 외화 지출의 이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현행 외환 관리 체제의 전면 개편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의 국제 수지나 내외 경제 여건에 비추어 수입의 지속적인 억제나 외자 조달의 「루트」를 다양화한다는 방향 설정에는 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행 외환 관리 제도가 60년대에 채택되어 현실 경제와 밀착되지 못함으로써 경기변동이나, 외환 거래 증대에 탄력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점도 많았음을 인식한다면 전면적인 개편은 불가피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로서는 외환 제도의 개혁으로 긴요치 않은 수입이 줄고 외차 유입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당면한 국제 수지의 애로가 조금이라도 완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이 같은 외환 정책의 전환이 포괄하고 있는 몇가지 문젯점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어야할 것이다.
우선 당장의 외화 결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람 불 수입을 연불 수입으로 대체할 것이라 하나 이는 오히려 수입을 자극하는 결과를 유발하지 않을 것인가. 수출의 계속적인 부진과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새해 들어서도 수입 증가 추세가 고개를 숙이지 않음을 볼 때 일시적인 지불 유예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보다 과감한 수입 억제로는 모두가 경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부문까지도 예외 없이 적용될 만큼 적극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임의 수요 부문은 물론 이른바 수입대종품목을 포함하는 기초 수요 부문에 대해서도 생산 활동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면서 조정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자본 유입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외환 장벽을 크게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이미 작년 말부터 국내 외국계 은행의 영업 활동 확대 허용이나 외국 금융 기관의 국내 진출 완화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누구의 돈이든 장·단기를 불문하고 우선은 많이 끌어들여야 된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만 과연, 우리 경제가 외환 장벽을 허물고 외국 금융 기관과 자유로이 경쟁할 만큼 체질 강화가 이루어져 있는 것인가. 외자 조달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외환 자유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방향은 국내 금융 기관의 국제화라는 범주를 훨씬 넘어 서고 있는 듯 하다.
국내 경제 여건이나 현재의 국내 금융 기관의 활동 능력을 충분히 고려한 단계적·점진적인 자유화가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더우기 우리에게 필요한 외자란 조건이 유리한 장기 자본임에 비추어 이 같은 문호 개방으로 설사 약간의 외자가 유입된다 하더라도 단기성이 대부분일 것을 생각하면 당면한 국제 수지 개선에 크게 보탬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통화 신용 정책의 한계가 특히 한정된 우리 경제 구조에서 외국 금융 기관의 활동 영역이 분별없이 확대될 경우, 그만큼 중앙은행의 통화 관리 능력이 줄어들 것을 고려한다면 외환 관리 완화는 보다 신중히 고려되어야할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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